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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안전 비용을 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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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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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런던특파원

엊그제였다. 비행기가 움직이는 걸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곧 목적지겠군. 아니었다. 안전 문제로 운항할 수도,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출발시간으로부터 30분이 흐른 때였다. 탑승객들은 그러나 동요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때 구의역 사고에 분개한 지인의 포스팅을 봤다. 오후 5시57분 사망 사고가 발생했는데 그로부터 26분 만에 열차 운행이 재개된 걸 두고서다. 그는 “문제가 생기면 출동해야 하는 시간이 무조건 1시간, 사람이 죽었는데 수습하는 시간이 20여 분. 꼭 이런 놀라운 스피드로 스크린도어 고장이 해결돼야 하고 열차가 다시 다녀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의당 안 됐다. 영국에선 인명 사고가 나면 반나절 이상 열차 운행이 중단되곤 한다. 신호 불량으로 인한 지연은 다반사다. 20분간 열차에 갇힌 적도 있다. 환자 이송을 이유로 플랫폼을 비운 것도 봤다. 안전 문제는 여기선 일상이다.

서울메트로가 운행 차질에 대해 사과한 걸 봤다. 초기엔 숨진 청년을 탓했다 들었다. 으스러진 생명보다 살아 있는 이들의 잠시 불편함의 총합이 더 미안한 사회구나, 지독한 현세주의가 무서웠다.

비행기 안에 기술자들이 오갔다. 30분 후 “다행히 안전엔 무관한 문제여서 비행하기로 했다. 관련 서류 작업만 마치면 출발한다”고 했다. 기내는 여전히 차분했다. 다시 30분이 흘러 “천둥·번개 때문에 못 떠난다. 기다려 달라”고 했을 때야 처음으로 푸념이 들렸다. 단 한 사람의, 그것도 외마디(Jesus)였다.

메일함엔 런던교통공사의 것도 있었다. 보수공사를 위해 주말에 일부 노선 운행을 중단한다는 고지였다. 진정 스크린도어를 고치는 게 그리 화급했던 것일까. 해당 문을 이용하지 말라고 안내하면 될 일 아닌가. ‘접근 금지’ 테이프를 붙이고 그래도 불안하면 직원이 서 있으면 되지 않았나.

우리는 이렇듯 당장 할 수 있는 일 대신, 또 오랜 시간과 막대한 재원이 드는 ‘해법’부터 궁리한다. 몇몇의 잘못으로만 한정하는 인책론으로도 들끓는다. 큰 진실은 외면한다. 돈과 시간, 불편이란 비용을 치르지 않으면서 빠르고 편하고 안전하길 기대할 수 없다는 것 말이다. 결국 누군가 대신 비용을 치르는데 대개 사다리의 가장 아래에 있는 이들일 수 있다는 사실도다. 우리는 떳떳하지 않다.

비행기는 결국 이륙했다. 두 시간 지연 출발한 만큼 늦게 도착했다. 승객도 승무원도 그러나 여느 비행과 다를 바 없이 웃으며 헤어졌다. 너무 뻔한 얘기지만 안전은 모두의 몫이다.

고정애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