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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눈의 한국 올림픽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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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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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
논설위원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중앙아시아의 신흥 산유국 아제르바이잔은 대표팀 5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외국 출신 귀화 선수였다. ‘외국 용병’을 써서라도 메달을 따려 한 것이다. 잡음도 적지 않았다. 불가리아 역도 선수 2명을 불러오면서 이들의 조국에 50만 달러 이상을 준 게 드러났다. 카자흐스탄이나 중동의 부국들 역시 외국 용병들을 대거 스카우트해 올림픽에 내보냈다. 선진국이라는 주최국 영국도 올림픽 개막 직전 외국 선수 9명의 귀화를 받아들여 비판을 자초했다.

요즘 한국에서도 평창 겨울올림픽에 대비한 외국 선수들의 특별귀화가 줄을 잇는다. 지난 3월에는 캐나다·러시아 출신의 아이스하키와 바이애슬론 선수 4명의 귀화가 허가돼 현재까지 외국인 9명이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 지난 1일에는 대한체육회가 독일 출신 루지 선수인 아일렌 프리슈의 특별귀화를 신청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들이 유학·결혼 등 정당한 이유 때문이거나 한국을 사랑한 나머지 이 땅에서 영원히 살겠다면 별문제다. 하지만 올림픽 출전만을 노리는 선수 개인과 메달 하나라도 더 따려는 체육계 인사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이들을 올림픽 대표로 내세우는 게 옳은가. 오만 인종과 섞여 사는 다민족 국가 영국에서도 귀화 선수들에 대한 거부감이 커 비판이 쏟아졌다. 하물며 순수 혈통을 자랑해 온 한국이다. 아이스하키 같은 단체 종목이라면 한국팀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외국 선수를 충원했다고 변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최근에는 개인 종목에서 한국과 아무 인연이 없는 선수들을 뽑고 있다. 금메달을 딴들 한글도 모르는 파란 눈의 귀화 선수가 시상대에 오른다고 한국인이 무슨 감동을 느낄 수 있겠는가. 남들도 한다고 이런 행태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한국은 1960년 로마 올림픽 때 노메달의 치욕을 겪었지만 성적이 갈수록 향상돼 2012년 런던 올림픽 때는 세계 5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더 주목해야 하는 건 한국 청년들의 체력이 계속 추락한다는 거다. 올 1월 문화체육관광부 연구 결과 20대는 2013년보다 달리기·윗몸일으키기·멀리뛰기 등 거의 모든 조사 분야에서 기록이 나빠졌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프랑스 쿠베르탱 남작은 이렇게 천명했다. “중요한 건 정복이 아니라 잘 싸우는 것”이라고. 이제 우리도 올림픽 금메달 수로 국력을 판단하고 자부심을 느끼던 시대는 저물지 않았나.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