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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인구 531만 명인데 골프장 경영난, 일자리 사라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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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람산업을 살리자 ① 벙커에 빠진 골프산업 <상>

그동안 한국 경제의 성장을 이끌어온 건 수출 제조업이었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불황에 제조업은 구조조정의 덫에 걸렸습니다. 여기다 알파고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도 사람의 일자리를 빠른 속도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해야만 하는 ‘사람산업’을 살리지 않고선 새 일자리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중앙일보는 올 연중기획으로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사람산업의 현황과 육성 방안을 모색해 보겠습니다. 첫 회 골프산업, 두 번째 관광산업에 이어 의료·교육·한류 등을 차례로 다룰 예정입니다.

| “국내선 비싸고 주변 눈치 보여…”
동남아로 중국으로 골프여행
김영란법 시행되면 더 타격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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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회사 직원 한모(40)씨는 1년에 두세 번 해외 골프여행을 간다. 올해 3월에도 금요일과 월요일 이틀 휴가를 낸 뒤 지인들과 필리핀에서 3박4일간 골프를 치고 왔다. 국내 골프장은 가격도 비싼 데다 혹시라도 직장 상사와 마주칠까 부담스러워서였다.

반면 동남아나 중국 골프장은 2~4시간 비행거리로 멀지 않은 데다 가격이 싸고 눈치 볼 필요도 없다. 그는 “항공비·숙박비 포함해 50만~60만원이면 3일 내내 골프를 즐길 수 있는데 국내 골프장은 여러모로 부담스러워 안 가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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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산업이 어렵다고 하지만 국내 골프인구가 줄어든 건 아니다. 2014년 골프 활동인구(1년간 골프 경험자)는 531만 명으로 2007년(251만 명)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그런데도 골프장마다 경영난을 호소하는 건 늘어난 골프인구가 해외나 스크린골프로 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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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골프협회에 따르면 2014년 해외 골프장에 간 사람은 113만 명으로 7년 전인 2007년(57만 명)보다 두 배가량 늘었다. 해외로 나가는 골프인구만 국내로 끌어들여도 지금보다는 골프산업의 경영이 개선될 거란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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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지난 1년 동안 골프를 친 사람 가운데 골프장을 주로 이용한 사람의 비중은 17.5%로 7년 전(15.4%)보다 2.1%포인트 높아지는 데 그쳤다. 반면 주 활동장소로 스크린골프장(30.8%)을 꼽은 비율은 7년 전(5.3%)보다 6배 가까이 늘었다. 골프인구는 늘었는데 골프장을 찾는 사람만 정체된 골프산업의 역설이다. 역대 정권마다 골프산업 육성을 내걸면서도 공식·비공식적으로 ‘골프 금지령’을 내린 것도 골프산업 침체를 부채질했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골프산업 종사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경영난에 몰린 골프장은 앞다퉈 캐디 감원에 나서고 있다. 아예 캐디를 없애는 골프장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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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권용 센추리21골프클럽(강원도 원주) 대표는 “골퍼가 직접 카트를 모는 셀프캐디나 캐디의 역할을 카트 운전과 거리측정으로 한정하되 캐디피를 확 낮춘 마셜캐디 제도를 도입하는 곳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캐디 수요가 줄고, 캐디피를 낮추다 보니 새로 캐디를 하려는 지망생도 예전처럼 많지 않다. 캐디 지망생 입장에서는 소득이 줄어들었는데 기숙사 생활, 주말 근무 등 열악한 근무환경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골프장 곳곳의 매점인 ‘그늘집’도 요즘엔 절반쯤 문을 닫았다. 오철규 대한골프협회 사무국장은 “그늘집 직원 인건비를 감당 못해 문을 닫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지방 골프장은 해당 지역의 유일한 일자리산업이기도 한데 캐디와 관리 인력이 줄면서 지역경제에도 주름이 지고 있다”고 했다.

| 퇴직자·주부도 부담 없이 치게
가격 거품 빼고 부가사업을

여기다 골프공이나 골프클럽 같은 골프용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골프장들은 이런 상황에서 9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설상가상이 될 것으로 우려한다. 오철규 사무국장은 “9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법인카드 결제 수요가 줄면서 골프장과 관련 산업이 잇따라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며 “가뜩이나 어려운 지역경제에도 상상 이상의 충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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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필 대구대 골프학과 교수는 “중산층이 느끼기엔 여전히 골프장 이용 비용이 비싸다는 게 문제”라며 “주부나 퇴직자가 골프장을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도록 가격 거품을 빼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그린피로만 수익을 낼 게 아니라 클럽하우스에서 결혼식을 하거나 평일 식당의 외부인 개방 같은 부가사업도 시도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이태경·장원석·함승민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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