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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The New York Times

이란 핵협상 타결의 오해와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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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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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미 번스타인
이론물리학자

지난해 10월 타결된 이란 핵협상이 미국 하원의 청문회라는 복병을 만났다. 청문회에서 공화당 의원들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였다.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도 가세했다. 미국 등 안보리 상임이사국들과 독일이 공들여 성사시킨 협상을 “이란만 꿩 먹고 알 먹은 사기극”이라 맹공했다. 하지만 협상의 실질적 성과에 대해선 공화당 인사들은 한결같이 입을 다물었다.

공화당 비판 불구, 성과 뚜렷
이란의 핵연료 생산량 급감
원자로도 민수용으로 바뀌어
‘협상이 핵개발 막는 길’ 입증

특히 트럼프는 ‘포괄적 공동 행동계획’이란 이름이 붙은 이란 핵협상에 대해 일자무식(一字無識)임이 드러났다. 그는 “미국이 아무런 대가 없이 이란에 1500억 달러를 상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돈은 미국이 이란에서 몰수했던 돈이다. 협상이 타결된 결과 돌려준 것뿐이다.

협상이 매듭지어진 지 반년이 넘었다. 그 결과 이란의 핵개발 능력이 얼마나 무력화됐는지, 또 국제사회가 이란의 핵개발 상황을 제대로 감독할 수 있게 됐는지 측정할 수 있게 됐다. 당장 지난 2월 26일 공개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보고서가 좋은 예다. 보고서는 핵협상이 전반적으로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필자 역시 당초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란의 핵연료 생산이 크게 줄어들었다. 핵개발 프로그램이 한창이었을 때 이란은 우라늄 농축 원심분리기를 1만8000대 넘게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핵협상 뒤에는 5000대 수준으로 감소했다. 테헤란의 첨단 핵기술 확보 노력도 중단됐다. 지난해까지 이란은 저농축우라늄 헥사플루오라이드를 16t이나 비축하고 있었다. 하지만 협상이 체결되면서 이란이 향후 15년간 보유할 수 있는 저농축우라늄은 300㎏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28일 러시아 선박이 이란의 저농축우라늄 1.1t을 러시아로 싣고 갔다. 이에 대한 가장 어리석은 논평은 트럼프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트위터에 “이란 핵협상은 사기다. 왜 미국이 우라늄을 갖지 못하고 러시아에 뺏겼나”라고 적었다. 이 카지노 재벌은 문제의 우라늄이 독성 강한 방사능 물질이란 사실도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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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협상 덕분에 20% 농축우라늄 제조를 놓고 테헤란이 주장해 온 궤변도 설 땅을 잃었다. 그동안 이란은 농축우라늄이 연구용일 뿐이라고 강변해 왔다. 하지만 협상을 통해 이란이 축적해 온 우라늄의 양은 거의 무한정 쓸 수 있는 수준임이 드러났다. 테헤란은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핵협상은 이란의 플루토늄 생산에도 쐐기를 박았다. 알다시피 원자폭탄의 원료는 두 가지, 농축우라늄과 플루토늄이다. 플루토늄은 자연 상태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원자로에서 사용후 연료 상태로 생산된다. 이란은 아라크란 도시에 플루토늄 생산용으로 추정되는 원자로를 건설해 왔다. IAEA가 이 원자로에 의혹을 제기하며 사찰을 요구했지만 테헤란은 거부해 왔다.

하지만 핵협상 타결 이후 이란의 입장은 바뀌었다. 기존의 원자로 설계안은 폐기됐고,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 아래 산업·연구 용도의 원자로가 건설되는 중이다. 특히 연료를 공급하고 폐연료를 가져가는 역할은 러시아가 맡았다. 이란의 또 다른 원자로인 부셰르 원전에서도 이 작업을 러시아가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란은 중수도 대부분 해외로 내보낼 계획이다. 중수 생산을 놓고 IAEA의 사찰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던 과거에 비하면 상당한 진전이다.

물론 이란 핵협상에서 아쉬운 점도 있다. 우선 “과거에 군사적 차원에서 진행한 핵개발 내역을 투명하게 밝히라”는 IAEA의 요구에 이란이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란 정부는 과거 무엇을 했든지 간에 2003년 이래 모든 (군사적) 핵활동을 중단했다고 주장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서방 핵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란이 정말로 13년 전 군사적 핵활동을 중단했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이란이 2000년대 들어서도 핵무기 설계 프로그램을 가동했다는 점이다.

핵무기 설계가 얼마나 적은 인원으로도 가능한지 알면 놀라 자빠질 것이다. 파키스탄의 핵개발에 참여한 과학자는 6명에 불과했다. 주어진 장비도 조악하기 짝이 없는 고물 컴퓨터 한 대뿐이었다. 연구진 중에는 필자의 친구인 파키스탄 핵물리학자 리아주딘도 있었다.

이란도 파키스탄의 ‘핵무기 아버지’인 A Q 칸에게서 사들인 프로토타입 원심분리기와 중국산 핵무기 설계도를 활용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핵기술을 감추기보다는 과학자를 숨기는 게 훨씬 쉽다. IAEA의 베테랑 사찰단조차 이렇게 숨은 연구진의 존재는 찾아낼 길이 없다. 현재 이란의 경우도 이에 해당할 수 있다. 하지만 이란이 우라늄이나 플루토늄 같은 핵분열 물질을 손에 넣지 못하는 한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란 핵협상이 타결됐기 때문에 인류는 핵기술과 원료를 동시에 가진 한 나라의 핵무기 보유를 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제러미 번스타인 이론물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