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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뚫린 구멍 '빵! 빵! 빵!'…누가 이랬나?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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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샨, 재정착민 가족, 아칸소,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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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된 채 창고에 들어 있다가 70년 만에 공개된 미 농업안정국(Farm Security Administration, 이하 FSA)의 다큐멘터리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다.

'폐기된 사진의 귀환'전,
옥인동 갤러리 룩스에서 6월 4일까지

다음달 4일까지 옥인동 갤러리룩스에서 열리는 ‘폐기된 사진의 귀환: FSA 펀치 사진’ 전시에서는 FSA의 사진 아카이브 10만 점에서 고른 25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전시작들의 특이한 점은 죄다 펀치로 구멍이 뚫려있다는 점이다. 사진이 제작되었을 당시 FSA 사진 아카이브의 책임자이자 경제학자인 로이 스트라이커가 사진 원본 필름에 구멍을 뚫어 사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유는 “FSA의 이념에 적합하지 않다” 였다.

1937년 창설된 FSA는 1929년 대공황 시대 당시 빈곤한 농촌 실상을 기록하고 정부 시책을 알리기 위해 사진을 이용했다. 미국의 다큐멘터리 사진가 워커 에번스, 벤 샨, 도러시아 랭 등을 동원해 사진을 찍게 한 뒤 홍보용으로 활용했다. 정책 홍보와 보도용으로 27만장이 촬영됐다.

스트라이커가 이끄는 기록팀은 크게 두 가지 임무를 맡았다. ▶대공황의 여파로 미국 농촌에 불어 닥친 빈곤의 실상을 기록해서 이를 정부 관계자와 국민에게 알리기, ▶뉴딜의 일환인 FSA 정책 실시로 이 같은 빈곤이 어떻게 개선되어 가는가를 기록하고 홍보하기다. 두 임무를 통해 기록팀은 궁극적으로는 루스벨트 정부가 실시하는 FSA의 정책, 더 크게는 뉴딜 정책에 대한 정부 관계자와 국민의 지지를 얻어야 했다. 이들이 찍어서 남긴 사진들은 농촌의 평화로운 정경이나 힘겹게 살아가는 농민, 빈민들의 일상과 노동을 평범하고 솔직하게 담고 있는 게 대부분이다.

이중 10만장이 폐기용으로 분류돼 필름에 구멍을 뚫은 채 창고에 보관된 것이다. 구멍을 뚫었던 로이 스트라이커는 흐릿하거나 완성도가 떨어지는 사진뿐 아니라 사람들이 정면을 바라봐 작위적 느낌이 난다거나 사진이 너무 예술적이라는 등의 주관적인 이유를 앞세웠다. 또 스트라이커는 사진가들에게 ‘마을 중심가를 담을 것’ ‘주요 건물은 클로즈업할 것’ ‘남편을 기다리는 부인과 아이, 쇼핑 꾸러미를 가지고 가게를 나오는 남자와 여자 등 거리의 사람들을 촬영할 것’ 등 구체적 지침을 내렸다.

※ 스트라이커가 모든 사진가에게 보낸 ‘작은 마을’ 촬영 스크립트 일부. (1939년 10월 11일자).
I. 거리에서
     A. 마을 중심가에 대한 전체 장면을 담을 것.
        -이 장면이 이 마을 전체를 담았다는 느낌이 들도록 주의해서 촬영할 것.
     B. 건물: 주요 건물은 클로즈업을 할 것.
        -이 클로즈업 장면에는 건물 정면 전체, 창문, 문이 포함되어야 함.
              a. 상점,
              b. 공연장,
              c. 교회,
              d. 주차장,
              e. 가게(이발소, 구두 가게 등)
     C. 거리의 사람들: 전형적인 인물을 촬영할 것. 사진에 인물의 얼굴, 옷, 활동이 나와야 함.
         a. 배회하거나 대화를 하는 남자들
         b. ‘토요일 오후’
         c. 아이(eye) 쇼핑하는 사람들
         d. 남편을 기다리는 부인과 아이
         e. 쇼핑 꾸러미를 가지고 가게를 나오는 남자와 여자

※ 긴급 촬영 스크립트
"앞으로 마을 전체보다는 한 가족을 집중적으로 촬영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AP 통신사 국장이 가족을 집중적으로 찍은 사진이 그가 속한 미디어에 더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스트라이커가 러셀 리에게 보낸 편지 중, 1937년

이상하게도 그 구멍은 지금 시점에서 오히려 시각적 효과를 더한다. 사진 정중앙에 자리한 검은 구멍은 시각적으로 충격적인 동시에 폭력적인 느낌을 준다.

FSA가 사진을 선택한 기준에 대해 전시를 기획한 사진사학자 박상우 중부대 사진영상학과 교수는 폐기된 펀치 사진을 검토하면서 B컷, 기술적 결함, 사진가의 실수, 너무 예술적으로 보이는 사진, 카메라를 의식한 시선 등 5가지 기준을 밝혀냈다. 특히 예술사진처럼 보이는 사진은 금물이었다.

박 교수는 “펀치 사진은 롤랑 바르트를 비롯해 지금까지 사진철학자들이 간과한 ‘선택’이라는 사진 행위와 사진의 또 다른 주체인 ‘선택하는 자’에 대한 개념을 가장 극명하게 시각적으로 제시한다”고 말했다. 또 “선택이라는 개념은 보도사진, 예술사진, 광고사진, 일상사진 등 사진의 모든 분야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바로 이 때문에 ‘선택’의 개념은 사진의 본질을 건드리며 현대 사진철학의 중심에 맞닿아있다”고 했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사진 갤러리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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