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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측근보다 핏줄…김정은, 여정·정철과 정기 ‘통치 모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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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영종의 바로 보는 북한



| 생모 고영희가 북송선 내린 원산서
측근들과 못하는 이야기 나누는 듯
권력 멀어졌던 정철, 정책 관여 주목

김정은(32)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형 정철(35)·여동생 여정(27)과 주기적인 모임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23일 북한 사정에 밝은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삼남매가 만나는 장소는 강원도 원산 소재 김정은의 전용 별장인 특각(特閣)이라고 하는데요. 김 위원장의 동해안 지역 군부대·공장 방문이나 휴양에 맞춰 일정이 잡힌다고 합니다. 우리 정보 당국에 따르면 이 자리에선 김정은 통치와 관련한 핵심 현안을 논의하고 정철과 여정이 분담할 업무가 정해진다고 합니다.

소식통은 “아버지 김정일이 2011년 12월 급작스레 사망하면서 권력을 넘겨받았지만 경륜이 부족한 데다 믿을 만한 핵심 간부가 없는 상황이라 남매들 간에 내밀한 소통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경제와 행정(공안통치 포함)을 챙기던 고모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반혁명’ 혐의로 처형한 2013년 12월 이후 고모 김경희마저 등을 돌리면서 위기감이 커졌다고 합니다.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이나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등 핵심 측근과 공유하기 어려운 민감한 문제를 삼남매 모임에서 다룬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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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을 끄는 건 김정철이 동생의 정책 결정에 관여한다는 점입니다. 김정철은 한때 후계 1순위였는데요. 이복형 김정남이 2001년 5월 일본 나리타공항 밀입국 사건 등 추문으로 아버지의 눈 밖에 나면서 대안으로 떠오른 겁니다. 하지만 호르몬계 질환으로 동생 정은에게 후계자 지위를 빼앗기면서 ‘비운의 왕세자’가 됐죠.

이후 김정철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국의 가수 겸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턴의 공연을 보려 해외 방문길에 나섰다가 서방 언론에 노출된 적이 있습니다. 권력의 정점에서 멀어졌다거나 동생에게 거리를 두려는 행보라는 해석이 나왔죠. 그동안 김정철의 평양 내 행적은 베일에 싸여 있었는데요. 소식통은 “여전히 김정은 권력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상황에서 김정철이 손을 놓고 서방 음악에만 심취해 있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북한의 공안정보 조직인 국가안전보위부의 실세라는 말도 나옵니다. 외교 소식통은 “2014년 7월 베이징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열린 납치 일본인 관련 북·일 협상을 지휘한 인물이 김정철이란 얘기가 일본 측 대표단 사이에서 나왔다”고 전했습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오빠의 후광을 업고 최고 실세로 자리했습니다. 이달 초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7차 대회 때는 ‘주석단’(VIP용 자리를 의미하는 북한 용어)에서 스마트폰과 수첩을 들고 행사를 총괄하는 장면이 포착됐죠. 당 간부들 사이에 “모든 길은 여정 동지로 통한다”는 의미의 ‘만사여통’이란 말이 나온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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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매의 원산 회동은 김정은의 원산 챙기기와 관련 있어 보입니다. 인근 마식령에 큰 스키장을 짓고, 원산 갈마비행장을 국제공항 규모로 리모델링했죠. 이를 두고 재일 동포 출신인 생모 고영희가 1960년대 북송선을 타고 도착한 곳이기 때문이란 말이 나옵니다. 한때 고영희가 평양 권력 내부에서 ‘원산댁’으로 불린 것도 이런 연유라는데요. 24일은 삼남매의 생모 고영희가 사망한 지 12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28년간 함께한 고영희가 프랑스 파리에서 유선암으로 숨지자 특별기편으로 운구해 평양 대성산 지역에 묘역을 조성해주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말년을 지낸 ‘첫사랑’ 성혜림이 2002년에 죽고 나서도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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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 당대회로 대관식을 치른 김정은이 본격적인 가계 우상화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오는데요. 생모 고영희를 어떻게 북한 주민들에게 알릴지는 다소 고민될 듯합니다. 재일동포 출신인 데다 고영희의 아버지가 일본군 군복을 만드는 공장 간부였다는 점이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북한 주민들 사이에 “원수님(김정은을 지칭)은 백두혈통이 아닌 후지산 줄기”란 소문이 돈다는 말도 들립니다. 집권 첫해인 2012년 초 고영희가 등장하는 기록영화 ‘위대한 선군조선의 어머님’을 공개하고 노동신문에 ‘평양의 어머니’로 띄우려는 시도를 했다가 중단한 일도 있습니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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