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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때 잘 노는 건 창조 위한 충전 |김인회<연세대교수·교육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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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 보자고 너도나도 바쁘게 뛰다보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한가지 고정관념이 생긴 것 같다. 일하는 것은 덕이고, 노는 것은 악이라는 식의 흑백론적 가치관이다. 되도록이면 노는 시간을 줄이고 일하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강박관념 비슷한 것이 우리사회 어디에서나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빨리 뛰는 사람일지라도 두 다리를 한꺼번에 움직이면서 뛸 수는 없는 법이다. 한 다리가 움직일 때에는 나머지 한 다리는 정지해야만 한다.
이렇게 양다리의 움직임과 멈춤이 반복됨으로써만 사람은 걷거나 뛰거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원리로 아무리 부지런한 사람도 일만 하면서 살수는 없는 법이다. 깨어 일어나서 일하는 시간이 있으면, 누워 잠자는 시간도 반드시 있어야만 사람은 살아갈 수가 있다.
우리의 삶의 원리나 우주의 운행원리나 마찬가지다. 낮이 있으면 밤도 반드시 있어야 하듯이 한번 숨을 내쉬었으면 반드시 한번 들이쉬어야만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우주의 원리에 따라 사람은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이고 그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을 요즘에는「교육」이라고 부른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에는 가르치는 일만이 아니라 배우는 일도 포함되는 법이다. 의도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있는 것처럼 의도하지 않으면서 가르치고 배우는 일도 얼마든지 있는 법이다. 마치 뛰는 사람의 두 다리나 낮과 밤의 관계처럼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교육의 한쪽이라면 학교 밖에서 경험하는 것이 교육의 나머지 한쪽인 것이다.
그러니까 학교 울타리 속에다만 가둬두면 교육이 잘 되는 것으로 알고 무조건 책상 앞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아이들을 윽박지르는 어른들의 교육열은 교육의 나머지 한쪽 부분을 없애버림으로써 교육 자체를 변신으로 만들려는 열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노는 것도 교육이고 잘 자는 것도 교육이고 어른들의 어른답지 못한 행동거지 바라보는 것도 넓게 보아 교육이다.
우리 문화 속에 잘못 자라온 가치관, 즉 노는 것은 나쁘다는 가치관 때문에 밝은 곳에서 놀아야할 아이들이 어두운 곳만 찾아 몰래 놀게된다. 물론 논다는 것은 창조를 위한 충전이란 점이 전제돼야할 것이다.
가르치는 것만이 교육이고 교육은 좋은 일이라는 고정관념, 가르치는 것과 무관한 일은 교육이 아니고 따라서 좋은 일이 되기가 어렵다는 식의 잠재의식은 결국 방학의 교육적 의미를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뒤집어놓고야 말았다.
방학은 학교교육을 쉬는 기간이고 따라서 교육의 고삐가 느슨해지는 기간, 어쩌면 교육적으로 볼 때는 좋지 않은 것을 더 많이 배우기 쉬운 기간이라는 식의 이른바 「교육적」인 염려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는 방학만 되면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들볶인다. 아이들은 학교 밖에서 지내는 시간에라도 학교 안에 있을 때나 다름없는 교과공부에 묶여있어야만 한다는 교육적 배려 때문에 산더미처럼 마련된 숙제물에 짓눌려 마음놓고 놀 수가 없고,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연수다, 강습이다 하면서 학기 중에 못 받은 교육을 받느라 바쁜 한편 아이들 감독책임에 몰려 방학이 오히려 더 고달프다.
도대체 우리 나라에는 국민들이나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줘야만 직성이 풀리는 높은 어른들이 너무나 많다. 학교에는 물론이고 학교 밖에서도 그렇다. 가르치지 않아도 배우는 교육이야말로 진짜 교육일 수 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진짜 승리인 것처럼 말이다.
잠자는 시간이 깨어있는 시간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듯이 교사건, 학생이건 방학 때 학교 밖에서 느긋하게 놀 줄 알아야 학교교육도 잘될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젊은 세대의 교육에서는 으례 자연의 드넓은 공간 속에서 오연지기를 기르도록 제도적인 배려를 했던 것이다. 젊은 세대의 활력은 곧 국가의 저력이고 원기이기 때문이다.
방학은 필요악이 아니라 교육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학생들과 교사들이 교실이라는 좁은 공간, 학교교육이라는 제한된 경험의 폭과 규제를 벗어나 또 다른 의미의 넒은 삶의 공간과 경험을 만끽하면서 생명력을 북돋울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 바로 방학의 교육적 가치라 하겠다.
방학을 빼앗기는 정도만큼씩 우리 나라의 교육은 활력을 읽게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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