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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사경 외길, 김경호 전통사경기능전승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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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한 권의 책이 회사로 배달되어 왔다.
『외길 김경호 전통사경, 그 法古創新의 세계』란 책이었다.
고려사경과 그가 재창작한 작품을 나란히 편집하여 묶은 책이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가 고려사경 유물을 어떻게 재창조하는지 설명하고자 했다고 했다.
그리고 비매품이라고 했다.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제공함으로써 후일의 연구 자료가 되도록 제작한 것이라 했다.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제공한다는 책이라 했다.
그런데 나는 사경에 문외한이다.
더구나 후일 이를 연구할 능력과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러니 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에게 배달되어 온 책이었다.
일단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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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갈 때마다 눈길이 그 책에 머물렀다.
그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눈만 한 번 깜빡여도 선이 삐뚤어지고 숨만 한 번 크게 쉬어도 선이 흔들리죠.”
그는 그렇게 1mm안에 5~10개의 선을 그려 넣는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수만 시간 얼마의 선을 그렸을까?

혼을 담은 그의 작품이 담긴 책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기자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 부끄러움이었다.
오늘 외길 김경호 선생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다.

그를 만난 건 지난해 이맘이다.
취재기자가 한국사경연구회장을 인터뷰하러 가자고 했다.
사실 사경이 뭔지도 모르고 따라나섰다.
알아보니 사경(寫經)은 말 그대로 하자면 불경을 옮겨 적는 일이었다.
고려 팔만대장경의 밑바탕에도 사경의 전통이 깔려 있다고 했다.
그런데 글만 쓰는 게 아니라 그림으로도 불경을 그리기도 한다고 했다.

사경이 뭔지도 모르니 당연히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다.
서울 연희동, 그의 작업실로 들어섰다.
하얀 한복을 입은 그와 마주했다.
잘 모르는 분야, 잘 모르는 사람을 마주할 땐 이야기에 집중하는 게 상책이다.
사진은 그 다음의 일이다.

취재기자와 그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데 보통 5~6개월, 길게는 9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테이블 유리 밑에 깔린 작품을 다시 봤다.
처음 자리 잡을 때부터 언뜻 보고 지나쳤던 것이었다.
대체 뭘 어떻게 그리기에 적어도 5~6개월이 걸릴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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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지금니7층 보탑 법화경 견보탑품

“1㎜ 안에 5~10개의 미세한 선을 긋기도 합니다. 어떨 땐 1㎜크기의 부처 얼굴에 눈과 코, 입을 그릴 때도 있습니다. 붓끝의 한두 개 털로 그려야 0.1㎜의 선이 나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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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테이블 밑그림을 봤다.
언뜻 볼 땐 몰랐던 것들이 그때야 보였다.
열을 지어선 7층의 탑들, 섬세한 상륜부, 탑신마다 들어선 글씨, 그 미세한 선들이 눈에 보였다.
경외심이 절로 드는 선이었다.
적어도 한 작품에 5~6개월이 걸리는 이유가 보였다.

“아교가 굳지 않으려면 실내 온도가 35도를 넘어야 합니다. 습도도 90%는 되어야 합니다.
조금만 붓을 잡고 있어도 땀이 흐릅니다. 눈만 한 번 깜빡여도 선이 삐뚤어지고 숨만 한 번 크게 쉬어도 선이 흔들리죠.”

혼신을 다해 이를 악물고 작업하다 보니 어금니가 빠지기도 했다고 했다.
숨 한번 제대로 못 쉬며 이 악물고 집중해야 하는 일,
사람이 할 일인가 싶었다.

“이렇게 하루에 8시간 정도 작업합니다. 작업할 때는 외출도 삼가고 밥도 집 밖에서 먹지 않습니다. 배가 부르면 청정심을 잃게 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의 얼굴과 테이블 밑 작품을 번갈아 보게 되었다.
마치 수도승 같은 얼굴이 비쳤다.
그 얼굴과 작품을 한 장의 사진으로 담으리라 작정했다.
테이블 유리를 들어 작품을 꺼냈다.
다행히 복사본이었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그의 옆에 복사본을 세웠다.
그리고 유리를 통해 복사본이 그의 얼굴에 비치게 했다.
그렇게 사진 찍을 준비를 하는 나를 보고 그가 내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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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을 꺼내 드릴까요?”
“아닙니다. 원본은 나중에 보여주십시오”라며 손사래를 쳤다.
하나하나가 어떻게 해서 나온 작품인가.
숨 한 번 쉬는 것, 눈 한 번 깜박이는 것조차 조심하며 수개월 밤새워 만든 작품이 아닌가.
만에 하나 원본에 흠집이라도 나면 그 엄청난 수고가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그런데 그는 부처 같은 미소로 원본을 꺼내주려고 한 게다.

그의 호가 ‘외길’이었다.
스스로 고등학교 때 지었다고 했다.
그간 한길로 일생을 매진한 사람들 숱하게 봐왔다.
하나 이렇게 지독한 ‘한길 인생’은 없었다.
사실 부귀영화도 없다.
제대로 알아주기만 해도 다행이다.
국보·보물만 200여 점에 이르는 사경이지만 전통이 끊겨 무형문화재 종목에도 오르지 않은 현실이다.

그런데도 그가 말했다.
“제 팔자요, 업(業)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우수한 문화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을 뿐입니다.”
그의 호가 왜 ‘외길’인지 알 것만 같았다.

인터뷰를 끝내고 그의 원본 작품을 감상했다.
‘감지금니 7층 보탑- 묘법연화경 견보탑품’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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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지금니7층보탑(법화경견보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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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지금니7층보탑(법화경 견보탑품)표지, 세로7.5 가로19.8cm

흰 장갑을 낀 그가 가로 6m 63㎝, 세로는 7.5㎝의 두루마리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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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지금니7층보탑(법화경 견보탑품) 사성기난,신장도,변상도,권수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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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지금니7층보탑(법화경 견보탑품) 부분클로즈업

두루마리가 펼쳐진 순간 숨이 멎었다.
내가 본 것은 그냥 작품이 아니었다.
0.1mm의 선에 담긴 혼, 그 혼들이 하나로 된 외길 삶의 수행이었다.

권혁재 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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