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革命 -혁명-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80호 29면

중국과 대만에서 모두 국부(國父)로 추앙하는 쑨원(孫文)은 1895년 광저우(廣州)에서 반청(反淸) 무장봉기를 준비했다. 정보가 사전에 새어 나가 거사는 실패했다. 일본으로 망명한 쑨원은 “일본 사람이 우리를 혁명당(革命黨)이라 부르는 데 뜻이 무척 좋다”며 ‘혁명’이란 용어를 받아들였다.


혁명(革命)은 중국서 만들고 일본서 다듬어진 한자다. 일본 근대 교육의 아버지로 불리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영어 ‘revolution’을 혁명으로 번역하면서다. 혁명은 메이지(明治) 시기 일본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화제(和制) 한자다.


혁명은 옛 중국서 천명(天命)의 바뀜을 말했다. 하(夏)·은(殷) 왕조 교체를 말하는 탕무혁명(湯武革命)이 대표적 용례다. 근대 ‘혁명’은 정치·경제적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변혁을 말한다. 왕조 교체뿐만 아니라 민주적 방식으로 독립적인 공화국을 세우겠다는 쑨원의 당시 구상과 맞아 떨어졌다.


1966년 또 다른 혁명이 대륙을 휩쓸었다. 십년호겁(十年浩劫·10년간 이어진 대재앙)으로 불리는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이다. 지난주 문혁 발발 50주년을 맞은 중국은 정중동(靜中動) 분위기다. 인민일보는 17일 “영도자의 잘못으로 시작, 반혁명집단에게 이용당해, 당·국가·인민에게 엄중한 재난을 불러온 내란”이라는 1981년 평가를 재확인하는데 그쳤다.


중국 집권당은 대신 개혁(改革)을 외친다. 혁명과 개혁 혁(革)자가 겹친다. 짐승의 갓 벗겨낸 가죽을 피(皮)라 하고, 이에 털을 뽑고 쓸모 있게 다듬은 것을 혁(革)이라 한다. 불필요한 가죽의 털과 기름을 발라내는 작업이다. 『주역(周易)』의 혁괘(革卦)는 “혁은 구악의 때가 이미 지나 새로운 믿음이 생길 때 이루어진다(革已日乃孚元亨利貞悔亡)”고 풀이한다. “군자도 표변하고 소인은 낯을 바꾸니 나아가면 흉하고 끝까지 머물면 길하다(君子豹變小人革面征凶居貞吉)”며 혁명 이후를 말한다. 군자도 혁을 완수하면 수구세력으로 변해 새로 얻은 권력을 지키기에 급급해지고 소인들은 이익에 눈이 멀어 간악해지므로 동조하지 말고 은거한 채 훗날을 기약하라는 가르침이다. 중국의 모든 정치 개혁은 문혁의 재발을 막는 작업이다. 40년이 지났어도 끝은 요원하다.


신경진베이징 특파원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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