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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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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10면

소재의 선택은 자유다, 대개는 계절을 노래한 생활시조가 대부분이었지만 가다가 보면 의욕을 가진 작품들도 눈에 뛴다. 그러나 이 경우 의욕이 앞선 채 소재를 소화하지 못해 더러는 생경하고 더러는 무슨 소린지 난해했었다. 결국 실력이 문제이겠지만 보다 그 사물을 오늘의 시각으로 조명하여 재구성해 보임으로써 우리앞에 무엇인가를 제시해야한다. 그 무엇인가는 바로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감동을 말한다.
『베틀 옆에서』는 그런 점에서 보면 베틀에 대한 찬찬한 관찰은 일단 잘 해냈다. 놀랍다. 둘째수에서 보인 정감이 세모시 올 만큼이나 가늘고 질기건만 역시 아쉬운 건 새로움의 시각이다. 그러나 둘째수 종장의 「…세모시는 밟아간다」의 표현에서 생기를 얻고 있다.
『살풀이』엔 「시나위」(무당춤의 살풀이 기본가락),「배래선」(옷소매의 늘어진 부분),「아쟁」(활로 소리내는 일곱현의 작은 악기) 등의 언어가 다소 어렵지만 살풀이의 모습은 잘 잡힌다. 단수로 소화하긴 아무래도 무리일 듯 하다. 그렇다면 종장의 몫이 그중 큰데 「하얀혼 넋풀이에 실려 바람결에 떠간다」정도면 어떨는지….
『낙화암』은 네수일편인데 두수·네째수만 택했다. 무척 평이한 것 같으면서도 고른 기교와 기량을 짐작하게 한다. 흔한 소재를 무리없이 다루고 소화해낸 강점을 지녔건만 새로운 맛이 덜하다. 장과 장사이에 변화와 비약이 주어져야 생기와 생명감을 얻어낼 듯하다.
『여름밤 강변에』는 앞의 작품과 같은 지적을 해야겠지만 그러나 풍경의 묘사로선 비교적 뛰어나다. 두 수중 한수만 골라내고 보니 더욱 그렇다. 「지금 막 유성의 꼬리 물고 뜬 열아흐레달」로 시작한 한수가 별로 나무랄데가 없다. 이주일의 가작으로 꼽아야겠다.
『7월』은 순순히 시조를 풀어가고 있다. 별 부담을 갖지 않고 음미하게 하는데 역시 종장 「버려야 사는 씨앗마다 참한 기쁨을 듣는구나」에 이끌린다. <이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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