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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이 받아야 할 진정한 예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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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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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사법시험을 유지하자는 내용이 담긴 변호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자동 폐기됐다. 따라서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사법시험은 폐지될 것이다. 사법시험 출신자로서 이 시험의 폐지에 대해 복합적인 감정이 들 수밖에 없다. 이게 어떻게 공부해서 붙은 시험인데. 이제 그 시험이 아예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스스로는 고생 많이 한 며느리인데 아들은 없는 처지처럼 느껴지면서 약간 억울하기조차 하다. 그러나 내가 고생했다고 하여 남도 고생하라는 건 부당하지 않나. 더구나 그 고생이 그다지 바람직하지도 않은 것이라면 말이다.

사법시험은 엄밀히 따지고 보면 자격증 시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런 식으로 무지막지하게 어려운 시험을 통해 소수 인원만 선발하고, 합격자들을 국가가 나서서 교육시킨 다음 일부는 법관이나 검사로 임용하고, 나머지도 특권층의 지위를 폐쇄적으로 향유하도록 하는 방식은 매우 독특하고 적어도 서구에서는 유사한 방식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소수정예 시대의 사법시험하에서 엘리트로 성장하는 정석을 거칠게 보자면 이러했다. 초·중·고 시절 열심히 공부해 명문대 법대에 간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시험 준비를 시작해 가능한 한 이른 나이에 붙는다. 어리면 어릴수록, 즉 소위 소년등과를 하면 더 좋다. 연수원에 들어가 또 죽어라 공부에 매진한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판사·검사·변호사가 된다. 남자는 군대도 법무관으로 간다. 즉 외부 사회와는 섞일 틈이 없는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된다. 한 기수의 인원이 적던 시절의 관계가 훨씬 더 끈끈하지만 정원이 많아진 이후에도 소속감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여기에 법관이나 검사로 같이 근무한 경험이 있다면 서로 느끼는 유대감 혹은 친근감은 더 강하다. 게다가 한국의 경우 판사나 검사를 하다가 사직하고 변호사로 나설 수 있으니 구조적으로 전관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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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들에게 이런 한국식 법조인 선발 제도와 법조의 구조 및 문화를 이해시키기란 쉽지 않다. 그저 나는 한국의 변호사 시험은 엄청나게 어려웠다고 말한다. 간혹 흥미를 보이면 설명을 시도하기도 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수년씩 공부를 하는데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따로 모여 사는 동네가 있고, 이 사람들이 모여 잠만 자는 건물과 공부만 하는 건물이 있는데, 또한 이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전문적인 식당이 존재한다고, 하물며 특유의 복장까지 있다고 말이다. 아주 예전에는 머리와 눈썹까지 밀고 산속에 틀어박히기도 했고, 심지어는 시험에 거듭 실패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조차 있다고. 듣는 영국인들은 정말이지 매우 놀라지만 이걸 어디까지 믿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를 영어로 하다 보면 나에게도 기이한 느낌이 든다. 이건 좀 무협지에 등장하는 무공훈련 같지 않나. 철사장(鐵砂掌)이라거나 금강불괴(金剛不壞)를 만드는 과정 같은 것 말이다. 영국인들은 자격증 시험이 뭐 그렇게 어려울 필요가 있느냐고 지적한다. 중요한 것은 자격증 자체를 따는 것이 아니라 이후 전문가로서 구실하기 위한 훈련을 얼마나 잘 받고 얼마나 풍부한 경험을 쌓았느냐는 것이라고 말이다.

사실 영국인들에게 더욱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전관예우다. 영국에서는 경력이 풍부하고 신망이 두터운 변호사들이 판사가 된다. 일단 판사가 되면 변호사로 돌아가지 못한다. 이를 금지하는 법이나 규정은 없지만 문화가 그렇다. 일전에 은퇴한 판사가 다시 변호사 개업을 시도했으나 명예를 지키지 못한다는 암묵적인 비난 때문에 포기한 적도 있다. 말하자면 영국에는 전관이 없다. 전관이 없으니 당연히 전관예우도 없다. 물론 한국의 경우도 전관이라고 해서 특별히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고들 주장한다. 주로 법조인들이 말이다. 하지만 재판을 진행하면서 예전 동료의 체면 구기지 않을 정도의 배려를 하겠지라는 기대만으로도 불안한 상태인 일반인들의 마음을 흔들기는 충분하다. 당장 합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수임료를 받은 전직 판사와 검사의 이야기로 세상이 떠들썩한 참이지 않나.

예정대로라면 로스쿨과 변호사시험이 사법시험을 대체할 것이다. 새 제도를 도입하며 기대했던 바는 지나치게 어려운 시험에 매달리며 젊음을 탕진하는 일을 없애고, 나아가 전관예우의 토양이 되는 특유의 폐쇄적인 법조 문화를 개선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늘 그렇듯 제도가 변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에 어쩌면 매우 당연하게 여기던 특권의식, 즉 일찍 어려운 시험에 붙었으니 판검사로 재직하는 동안에는 사회적 대접을 받다가 이후 어느 시점엔 변호사로 변신해 경제적으로도 보상받아야겠다는 기대가 사라져야 전관예우라는 말도 없어질 것이다. 영국의 법관들은 물러난 이후 충분한 ‘예우’를 받는다. 사회적 존경이라는 예우를 말이다.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