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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봄날은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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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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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새누리당의 당내 내홍이 점입가경이다. 당 비상대책위원회와 혁신특별위원회 구성이 친박계의 반발로 결렬됐다. 총선에서 패배했지만 새누리당은 그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총선 전에는 공천을 둘러싸고 이한구 공천심사위원장 등 친박계와 김무성 대표 등 비박계 간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옥새 파동’까지 겪었다. 이러한 당내 분란이 부정적 영향을 미쳤고 새누리당은 122석을 얻는 데 그쳤다. 선거 패배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반성은커녕 이번에는 당권을 두고 파벌 다툼을 재연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뜻을 같이하는 이들의 집단이라고 해서 정당이 내부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운영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정당은 상이한 입장을 가진 파벌의 공존이 일반적이다. 분란과 갈등의 원천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파벌은 당 지지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고 당의 향후 진로에 대한 대안적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과거 일본 자민당에서 다나카 총리가 금품 스캔들로 물러났을 때 그의 뒤를 이은 것은 청렴한 이미지의 미키 총리였다. 자민당은 파벌 간 권력 교체를 통해 당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임기 후반 집권당의 선거 패배나 대통령 지지도의 하락은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다. 또한 선거 패배 이후 당내에 파벌 간 갈등이 생겨나는 것도 특별한 일이 아니다. 단임 대통령제에서는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집권당과 대통령 간의 이해관계는 점차 분리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차기도 고려해야겠지만 당장 20여 개월의 ‘현재’를 고려해야 하는 친박계와 선거 패배 이후 차기 집권을 위해 당의 변화를 이뤄내야 하는 비박 간의 입장 차이는 분명히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도, 이명박 대통령도 모두 겪었던 일이다. 문제는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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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20개월 남은 2006년 6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대패했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전북에서만 당선자를 냈고, 한나라당은 호남과 제주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승리했다. 열린우리당은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완패했다. 지방선거에서의 참패는 열린우리당의 당내 내분을 부추겼다. 선거 참패를 계기로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못마땅해하던 비노의 불만은 폭발했고 결국 비노 세력이 2006년 말부터 탈당하면서 당은 분열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대선을 앞두고 야당 세력은 재결합해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했지만,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정동영 후보는 이명박 후보에게 500만 표 이상의 큰 차이로 패배했다.

한편 임기를 1년여 남긴 2011년 말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20%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다가올 총선, 대선에서는 ‘MB정권 심판’이 부각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야당은 범야권 세력을 묶어내어 민주통합당을 창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2011년 12월 박근혜 전 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했고 당의 혁신을 위한 전권을 부여했다. 박근혜 비대위 체제하에서 한나라당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고치고 당의 로고와 상징색까지 모두 바꿨다. 선거를 앞두고 이명박이라는 ‘과거’ 대신 박근혜라는 새로운 ‘미래’를 내세우며 당의 면모를 일신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152석의 과반 의석을 얻었고 대선에서도 재집권에 성공했다.

이처럼 지난 일들을 볼 때, 20대 총선에서 패배한 새누리당 내에서 당 혁신의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4년 전에 비해 달라진 것은 대통령의 파벌이 그러한 변화를 용인하지 않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노무현·이명박 두 대통령 시기와 비교할 때 지금 새누리당의 모습은 열린우리당 때와 더 비슷해 보인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집권 세력 내부의 혼란과 갈등의 격화는 현 정부의 통치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다. 더욱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논란에서 보듯이 야당과의 ‘협치’도 쉬워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집권당 내의 파벌 싸움은 여소야대에서 야당의 목소리를 더욱 높이게 할 것이다. 이번에 ‘판을 깬’ 친박계가 당 대표가 된다고 해도 이런 상황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남은 임기 동안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 지경이 되었는데 새누리당은 무슨 염치로 내년 대선에서 국민에게 다시 권력을 맡겨 달라고 할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 집권 10년을 눈앞에 둔 요즘 새누리당을 보면 이런 말이 왜 나왔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나 새로운 사회 변화를 위해서도 다음 대선에서는 집권 세력이 바뀌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새누리당의 봄날은 가고 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