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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강남역 10번 출구

중앙선데이

입력

? VIP 독자 여러분, 중앙SUNDAY 편집국장 이정민입니다.


? "여성이란 이유로 죽고싶지 않다."? 강남역 10번 출구앞을 뒤덮은 추모 메시지에 적힌 글입니다.? 20대 여성이 공중 화장실에서 영문도 모른 채 무참하게 살해당한 '강남역 살인 사건'에 대한 추모 행렬이 시간이 갈수록 불어나고 있습니다.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피의자 남성이 정신분열증 입원 전력이 있었다는 점과 경찰 조사에서 "평소 여성들에게 자주 무시당했다"고 진술한게 알려지면서 "여성혐오 범죄 아니냐"는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여성혐오 범죄 문제를 공론화해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고요.? 이번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인지 여부는 좀더 따져봐야 합니다. 하지만 최근 불특정 여성을 대상으로 특별한 동기가 없이 저질러지는 강력 범죄들이 늘어나면서 심리적 위축과 공포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1회성 사건으로 넘겨버릴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4대 강력범죄(살인,강도,강간,약취ㆍ유인) 피해자 10명중 9명이 여성(2014년 법무부 통계 자료)이라면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 아닙니까.


? 살인같은 극단적인 방법까진 아니더라도 여성혐오·여성 비하 기류는 사회 저변에 만연돼 있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성폭행·성추행 사건은 물론이고 된장녀·김치녀·김여사 같은 성 차별적 은어들이 걸러지지 않은 채 버젓이 쓰이고 있지 않습니까.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사물화·대상화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 수천년동안 이어져온 인류 문명사는 남성중심적·가부장적 문화를 중심으로 발전돼왔고, 이 속에서 여성은 종속적·부수적·열등한 존재로 교육되고 인식돼 왔습니다. "열어보지 말라"는 프로메테우스의 경고를 어기고 판도라가 상자를 열어봤기 때문에 인간이 생노병사의 질곡에 빠지게 됐다는 그리스 신화의 설정은 여성에게 원죄가 있다고 웅변하고 있습니다.'여성=악(惡)'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의 부각입니다.? 여성혐오는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여성은 하등인간이며, 따라서 정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인식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성비 불균형과 여성들의 사회 진출 확대로 더이상 여성 위에 '군림'하지 못하게 되면서 좌절과 분노를 느끼게 되는거죠. 강남역 사건의 피의자처럼 여성에게 무시당하고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열등의식의 극단적 발동은 살인같은 극악한 범죄로 나타납니다.


? 남성우월주의가 강하게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빈발합니다. 검경이 수사를 강화하고 여성 대상 범죄를 강력하게 다루는 법 체계의 개선은 어찌보면 너무 늦은 조치입니다. 문제는 이런 것만으로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는 겁니다. 근본적인 방법은 문화를 바꾸는 것이어야 하고,문화를 바꾸는 건 결국 교육의 몫입니다. 남성과 여성이 대결적·주종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평등한 존재라는 양성 평등교육이 더 절실해지는 까닭입니다.? 진정한 양성 평등이란 어떤 상태일까요.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COO의 글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샌드버그는 저서『Lean In』에서 "진정한 양성 평등은 여성 권익의 신장만 의미하는 건 아니다. 여성들이 과거 남성들이 하던 영역의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남성들도 여성들이 하는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정의했더군요.?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야당 지도자가 강남역 10번 출구를 찾아 "다음 생엔 부디 같이 남자로 태어나요"라는 글을 남겨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애도하는 심정에서 쓴 글이겠거니 하면서도, 그 사고의 편협함과 통찰력의 민낯을 본 것 같아 뒷맛이 개운치 않았습니다. 다음 생에 남자로 태어나고 싶지 않은 여성들은 어떡해야 하나요?


? 이번주 중앙 SUNDAY는 소설가 한강씨의 맨부커 상 수상을 계기로 한글 콘텐트의 세계화가 가능할지 짚어보는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과 세계한류학회 미국지부장 신혜린 교수의 대담을 통해 한국문학이 한류 콘텐트의 중추적 역할을 하기 위한 필요충분 조건을 따져봤습니다.분당 위기로 치닫고 있는 새누리당 사태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같은 대표적인 '장외 주자'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곧 사무총장 임기를 마치고 돌아올 반 총장과 정계은퇴 발언 후 칩거에서 벗어나 정치적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손 전 대표의 전략과 이들이 빚어낼 대권 구도의 변화를 취재했습니다. 이들의 움직임이 중앙 SUNDAY가 5월8일자로 보도한 '정계개편 시나리오' 기사에서 예고한 행보와 상당부분 일치하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관련기사] 3당 시대,꿈틀대는 정계개편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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