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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소리 지우는 예술공간…민통선 안에 첫 미술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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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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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군 횡산리 민통선 안에 문을 연 연강 갤러리 외부 모습. 사진가 한성필씨가 찍은 주상절리를 확대한 대형 장막과 680개 ‘갤러리 도어’로 세운 ‘평화의 문’으로 이뤄졌다. [사진 더공감]

대북방송과 대남방송이 왕왕 울리는 곳, 북에서 쏜 포탄이 떨어지고 방류한 물이 흘러드는 곳, 전쟁 끝난 지 60여 년이 흘렀어도 아직 포성이 그치지 않는 곳. 대한민국 최북단 경기도 연천은 묘한 긴장감이 서걱거리는 접경지역이다. 그 희생에 대한 보상일까. 군사 경계로 묶여버린 자연은 자본과 문명에서 자유로운 흙냄새를 풍기며 천연덕스럽다. 이 모순의 땅에 평화를 얘기하는 예술 공간이 19일 문을 열었다.

연천‘연강 갤러리’개관 기념전
한성필 연천 풍광 사진작품 전시
‘평화의 문’특수한 외벽도 눈길

연천군 중면 횡산리 243번지 옛 안보전시관을 재활용한 ‘연강 갤러리’다. 연강(漣江)은 임진강의 별칭. 휴전 이후 민통선 안에 들어선 첫 문화시설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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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기념전은 사진가 한성필(44·사진)씨가 연천에 머물며 작업한 ‘이노센스(INNOCENCE)’다. 지질학의 보고로 불리는 지역답게 주상절리와 재인폭포 등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광이 널려 있는데 이를 카메라 렌즈로 떠내며 작가는 ‘천진난만’이란 제목을 붙였다.

한성필 작가는 “처음 올 때는 연천이 지닌 특수한 상황이 두려웠는데 막상 기막히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시간이 만들어 놓은 장엄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수 억 년 세월이 빚어낸 절대적 미를 한줌 인간의 이념이 상대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한성필의 카메라가 보여주는 것은 대지에 기록된 숭고함의 기억”이라고 평했다.

2층 갤러리로 오르기 전 1층 안내소에는 연천의 명소를 소개하는 자료와 한성필 작가가 반년에 걸쳐 기록한 영상물이 관람객을 맞는다. 한 작가는 “기상 나팔소리와 대남 방송이 울리는 아침마다 묘한 감정을 느끼며 촬영을 나갔다”고 회상했다. 안개에 휩싸인 대지의 신비로움을 깨는 사격장의 총소리는 비현실적 공간을 다시 현실의 시간으로 돌려놓는 타임머신과 같았다고 했다. 동영상은 부조리한 한 편의 무언극처럼 다가온다.

연강 갤러리는 멀리서도 한 눈에 띄는 외벽의 특수함으로도 지역 명소가 됐다. 한성필씨가 찍은 사진으로 전면에 대형 장막(파사드)를 치고, 베트남 등지에서 가져온 ‘갤러리 도어’를 활용한 ‘평화의 문’을 벽에 세웠다. 디자이너 조상기씨는 “남과 북에 바람이 솔솔 통하라는 뜻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16개국 대사관에 부탁해 받은 평화의 메시지를 동판으로 떠 붙일 예정인데 캐나다 대사의 한마디가 가슴을 울린다. “모든 한국인들이 이 평화의 문을 지나 하나 된 미래를 함께 만들어 나아가기를 기원합니다.”

전시는 11월 20일까지. 02-2268-1973.

연천=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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