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안한것만 다행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30여명의 생명을 한순간에 앗아간 부산문현동 산사태는 사고의 위험을 30여년이나 방치한 산비탈 달동네였다는 점에서 또한번 값비싼 교훈을 남겼다.
이곳은 6·25동란 이후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경사 60도의 산허리를 깎아 이룬 무허가·불량건물지대. 대부분 기초공사도하지 않고 시멘트블록으로 집을 지어 살아오다 최근에야 그중 일부가 양성화됐다. 절개지에 축대도 쌓지 않고, 하수도시설마저 제대로 하지 않은채 방치된 마을이 그동안 견뎌온 것만도 오히려 용하다고나 할까. 『무허가로 집 짓고 사는 처지이니 철거안한 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하라』며 봐줬다는 것인지,『세금을 적게 내니 공사 안해준다』는 것이었는지. 당국이 좀더 적극적인 자세로 무허가·불량건물들을 철거했거나 일찍 양성화해 축대며 하수도시설등 필요한 조치를 취했더라도 이번과 같은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위험지역의 무허가·불량건물을 방치했다가 재난을 당한 예는 허다하다. 최근의 예만 들어도 77년7월 38명이 압사한 안양3동 산사태, 32명이 몰사한 시흥2동 산사태, 37명이 죽은 79년의 진해시 장복산사태, 작년6월의 김포 (13명) 와 서울수유동 (7명) 참사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들 지역은 하나같이 영세민들이 허술한 집을 짓고 살던 곳으로 당국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이른바「행정의 사각지대」였다.
대부분의 수해가 사람의 힘으로 막기 힘든 천재이긴 하지만 사고는 길 없고 하수도 없는 주택가, 축대 제방 없는 고지대, 견고하지 못한 무허가·불량건물에서부터 일어난다.
작년 서울수해때 인명 피해가 난 곳도 모두 고지대 무허가·불량건물이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서울시내에서 만도 14만여채의 무허가 건물이 있고 이중 안전도가 낮고 축대나 하수도시설이 제대로 안된 불량주택도 10만채나 되며 이곳에 사는 주민이 1백수십만명에 이른다.
그러나 작년 수해후 1년이 다됐는데도 무허가건물 양성화는 아직도 결말이 나지 않고 따라서 이들 지역에 대한 상하수도·도로등 간접자본투자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당국은 이들 무허가·불량주택지대를 언제까지 방치해 둘 것인가.
문현동 사고가 가르쳐주듯 무허가·불량건물에 대한 안전대책은 다른 어떤 수방대책 못지 않게 절실한 것이 아닐수 없다.
철거할 것은 하루속히 헐어 재난으로부터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양성화한 지역에는 상하수도·도로·제방등을 완벽하게 갖춰 안심하고 살수 있게 해줘야 할것이 아닌가. 위함지대 무허가·불량건물을 이상 더 방치해 둘수는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