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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마저 삼킨 황토더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부산=본사특별취재반】「앗」하는 순간 경사60도의 가파른 산비탈 아래 마을은 황토 뻘 속에 묻혀 버렸다.
사고는 주민들을 대피시키던 중에 일어났으며 장마철을 앞두고 재해위험 및 취약지구에 대한 사전점검과 방제대책이 끝났다는 당국의 발표가 있은 지 불과 며칠후의 참변이었다.
순간적인 사고에 비명마저 잃어버린 피해주민들은 대부분 안전지대로 일단 대피했다가 가재도구 등을 꺼내러 되돌아간 사이 변을 당했다.
◇사고순간=흙더미에 묻혔다가 중상을 입고 구조된 성근수씨(41·부산시 문현2동 613의45)는 5일 상오 9시부터 마을 뒤 산 쪽에서 흙탕물이 쏟아져내려 주민 20여명이 배수로 개설 작업을 하던 중 낮l2시25분쯤 산비탈에 서있던 5m크기의 소나무·접목 등이 「우지직」 소리를 내며 쓰러지면서 흙더미가 덮쳤다고 했다.
마을에서 산사태를 목격한 서분남씨(47·여)는 흙더미가 무너져 내리면서 산 맨 위쪽에 있는 윤일만씨(42)집 등 13채를 덮치고 다시 계단식 축대를 부수고 아래쪽 고영만씨(45)집등 5채를, 그리고 약 5분 뒤에 3번째로 산사태가 나면서 너비 6m의 도로 아래쪽 이찬배씨(58)집 등을 덮쳤다고 했다.
◇현장=산사태가 쓸고 간 부산시 문현2동 613 일대는 6·25후 피난민들이 몰려와 주택2백50여 채로 마을을 이룬 속칭「달동네」.
마을아래 6m차도에서 내려 폭1.5m의 골목길을 따라 50m쯤 경사 길을 올라가야 하는 곳이다.
산사태가 쓸고 간 2천여 평방m내에 있던 24채의 주택(10∼20평 크기)들은 황토 뻘에 묻혀 흔적이 없었고 부서진 블록·슬레이트 조각 등만 뒤엉켜 높이 3∼4m씩 군데군데 쌓여있었으며 집안에 있던 냉장고·TV등 각종가재도구와 이불·베개·그릇 등이 황토더미 위에 나뒹굴고있어 흡사 전쟁후의 폐허였다.
◇구조=사고직후 부산시 재해대책본부는 남구 수방 대책 위원 1백여 명과 굴착기 2대 등 중장비 10여대를 동원, 횃불을 밝힌 채 철야 구조작업에 나섰으나 현장과 연결되는 폭 6m의 도로마저 매몰 돼 중장비를 투입하기 어려워 작업은 지지부진한 상태. 게다가 6일 아침부터 다시 장대비가 내려 완전구조작업은 이날 하오에나 끝날 것으로 보인다.
하오6시쯤 굴착기가 가로3m, 세로2.5m의 철근 슬라브 조각을 끌어올리자 이씨 집에 세들어 살던 이영수씨(42)가 숨진 채 발견 된 뒤 이씨의 시체를 들어올리자 그 밀에 이씨의 부인 강순애씨(38)가 큰 상처 없이 실신해있어 구조반원들이 박수를 쳤다.
◇문제점=이번 참사는 당국의 안일행정이 빚은 막을 수 있는 참사였다.
산사태가 난 문제의 황령산은 해마다 장마 때면 부분적인 산사태가 발생, 주민들은 그동안 반상회 등을 통해 여러 차례 항구대책을 건의했으나 당국은 지난해 물길2개를 만든 것이 고작, 주민들의 진정을 외면, 재해위험지구 지정대상에 조차 포함시키지 않은 채 방치해왔다.
게다가 사고당일에도 본격적인 산사태가 일어나기 3∼4시간 전부터 곳곳에서 위험신호가 있었으나 당국은 상오8시쯤 문현동 장 등이 핸드마이크로「침수위험」이 있다며 주민대피를 종용했을 뿐 적극적인 대피조치나 사후관리를 취하지 않아 주민스스로 성동국교 등에 일시 대피했다가 다시 가제도구 등을 꺼내러 간사이 참사는 빚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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