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중국의 ‘무례외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기사 이미지

남정호
논설위원

1986년 4월 전두환 대통령의 영국 방문을 앞두고 청와대는 특별한 요구를 했다. 숙소로 잡힌 런던의 최고급 C호텔 방의 창문을 모두 방탄유리로 교체해 달라는 것이었다. 83년 미얀마 아웅산 테러사건을 겪은 터라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들은 척도 안 했다. “수많은 정상이 오갔지만 방탄유리 없이도 아무 일 없었다”는 거였다. 결국 전 대통령 내외는 한국 대사관저에서 묵어야 했다.

이처럼 콧대 높은 영국 정부가 지난해 10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방문 때에는 까다로운 중국 측 요구를 거의 들어줬다고 한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보안을 맡았던 경찰 수뇌부에게 “당시 중국인들이 몹시 무례했었다”고 불평한 영상이 지난 11일 공개되면서 비화가 드러났다.

영국 언론에 따르면 당시 중국 측은 시 주석이 묵을 버킹엄궁 내 ‘벨지언 스위트’에 별도 화장실이 없는 데다 수행원용 방 가구들이 풍수에 맞지 않게 놓여졌다며 방문을 취소하겠다고 위협했다고 한다. 또 옷장을 붉게 칠하는 한편 만찬 메뉴는 중국 측 동의를 얻어야 하며 자신들의 음식을 궁내에 들여올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만찬장 참석자들의 좌석 배치마저 멋대로 바꾸려 했으며 객실 직원들이 룸서비스를 위해 방에 들어오는 것도 막았다. 가장 곤란한 요구는 시 주석 부부가 탈 왕실 마차 안에 경호원을 동승시켜 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영국은 이 같은 요구를 많은 부분 들어주긴 했지만 외교적 처신에 능하기로 유명한 엘리자베스 여왕마저 7개월이 지난 지금도 분이 안 풀린 모양이다.

중국의 외교적 무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9년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 때에는 중국 대표단이 너무 무례하게 굴어 영국·프랑스가 공식 항의했을 정도다. 존 헌츠먼 전 주중 미국대사 역시 “(중국이) 힘을 과시하며 공격적으로 변한 외교 정책 탓에 전 세계의 친구를 잃고 있다”고 진단했었다.

한국도 중국의 외교적 무례에 당한 적이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문제로 논란이 빚어졌던 지난 2월, 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대사가 더불어민주당을 찾아가 “사드 배치가 (한·중) 양국관계를 순식간에 파괴할 수 있다”는 협박성 발언을 해 한참 시끄러웠다.

잘못된 행동도 거듭되면 습관이 된다. 중국이 한국 등 주변국 사정을 존중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요구만 하는 날이 오지 않도록 절대 얕잡아 보여서는 안 될 일이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