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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웃기는 대통령’이 보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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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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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대통령의 실세 보좌관이 코미디 제작사로 이직하는 나라. 그리고 그 결정이 야유 아닌 박수를 받는 나라. 미국이다. 사연의 주인공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문을 담당했던 데이비드 리트. 그는 24세였던 2011년 백악관에 입성해 지난 1월까지 오바마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이자 연설문 담당 선임비서관으로 일했다. 그러다 지난 2월 코미디 영상 제작사로 자리를 옮겨 작가로 일하기 시작했다. 제작사 이름은 ‘웃기지 못하면 죽어라’는 뜻의 ‘퍼니 오어 다이(Funny or Die)’. 뉴욕타임스 등 미국 매체들은 이 소식을 전하면서 “정치 풍자 코미디가 더 재미있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리트가 코미디 제작사로 이직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대통령의 농담과 유머를 고안하는 일이었기 때문. 리트는 ‘연설문 작가(speechwriter)’보다는 ‘농담 담당 작가(joke writer)’로 더 자주 불렸다. 그런 그를 지근거리에 뒀다는 건 오바마 대통령이 국민을 ‘웃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긴, 오바마뿐만이 아니다. 역대 성공한 미국 대통령들은 모두 ‘웃기는 대통령’이었다. 지난달 열렸던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만찬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재치를 뽐낸 연설을 해 화제가 됐지만 이 만찬에서 대통령이 유머를 선보이는 건 100년 가까이 이어진 전통이다. 자신도 대통령 후보였던 밥 돌 전 상원의원은 2000년 『대통령의 위트』라는 책을 내고 역대 미국 대통령 순위를 유머감각을 기준으로 매기기도 했다.

1위인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두 얼굴의 이중인격자”라는 비난을 받고는 “제가 얼굴이 두 개라면 과연 지금 이 (못난) 얼굴로 여기에 나왔을까요?”라고 응수했다. 스스로를 낮추는 유머를 구사하며 고급스러운 복수의 한 방을 날린 셈이다. 자기를 낮추는 유머를 구사하는 건 오바마도 마찬가지다.

리트는 한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놀림의 대상으로 만드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게 오바마 대통령의 특징”이라고 했다.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 잭 베니는 “남을 희생양으로 삼는 게 아니라 자신을 도마에 올리는 게 농담의 기본”이라는 말도 남겼다.

한국에선 왜 이런 대통령을 찾기 어려울까. 링컨이나 오바마라고 웃을 일만 있어서 농담을 한 건 아닐 것이다. 링컨은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때 이런 말을 남겼다. “대통령인 나는 울면 안 되기 때문에 웃는다.” ‘웃기는 대통령’이 보고 싶다.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