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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객 김광석과 법정 스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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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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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논설위원

전시장 들머리에 오토바이 모형 한 대가 놓여 있다. ‘부릉~부릉’ 굉음으로 유명한 할리 데이비슨이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자유의 상징처럼 통한다. 가객(歌客) 김광석도 그런 꿈을 꿨다. “마흔이 되면 하고 싶은 게 있다. 오토바이를 하나 사고 싶다. 멋진 할리 데이비슨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일주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가객은 서른둘 짧은 생을 마쳤다. 그의 20주기를 맞아 서울 대학로 홍익대 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김광석을 보다’ 전시에는 ‘또 하루 멀어져 간다’를 읊조렸던 김광석의 기쁨과 소망, 슬픔과 절망이 켜켜이 쌓여 있다.

평소 김광석에게 많은 친밀감을 느꼈다. 나직하면서도 터질 듯한 목소리로 우리네 고단한 삶을 노래해 온 그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전시장에서 눈에 띈 건 가객과 6년 전 입적한 ‘무소유’ 법정 스님의 인연이다. 김광석은 1991년부터 4년간 진행한 불교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밤의 창가에서’에서 스님과 처음 만났다. 직접 계(戒)를 받을 만큼 가깝게 지냈다. 그가 받아쓴 계첩(戒牒) 한 대목이 들어왔다. ‘삿된 행실을 하지 않고 청정행(淸淨行)을 닦겠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실하게 살겠습니다.’ 가객에게 몸과 마음을 닦는 수행은 더도 덜도 아닌 음악 자체였다.

김광석의 숱한 히트곡 가운데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를 좋아한다. 삶의 모순을 껴안는 노랫말이 제법 불교적이다. 아니 종교적이다. 서로 상충하는 것을 어우르는 슬기가 담겨 있다. 예컨대 ‘물속으로 나는 비행기’ ‘하늘로 나는 돛단배’는 기본이다. 태공에게 잡혀온 참새는 긴 숨을 내쉬고, 독사에게 잡혀온 땅꾼은 긴 혀를 내두른다. 주인과 손님이 뒤바뀐 주객전도(主客顚倒) 같으면서도 상대의 처지를 인정해 주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살아 있다.

이 노래 가사처럼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이다. 각계각층 이해가 충돌하는 위험사회다. 조금만 건드리면 화를 터뜨리는 분노사회다. 그 혼돈에서 벗어나는 길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남자처럼 머리 깎은 여자’ ‘여자처럼 머리 긴 남자’를 인정하는, 너와 나의 차이를 받아들이되 둘은 결국 하나라는 것을 깨닫는 ‘불이(不二)’의 지혜가 그립다. 그간 지은 ‘말빚’을 남기지 않겠다며 자신의 모든 책을 절판하라는 법정 스님의 유언도 그런 뜻이 아닐까 싶다. 토요일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전국을 물들인 형형색색 연등 행렬이 어울림을 노래하고 있다. 가객의 법명도 ‘원음(圓音)’, 즉 ‘둥근 소리’였다.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