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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이제야 깨닫는 뉴캐슬의 아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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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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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템스강에 전시된 영국의 전함 벨파스트호입니다. 이 배는 한국전쟁에도 참여했습니다. 강대국이 지켜준 한국, 이제 영국에 군함을 만들어 파는 나라가 됐습니다.” 2012년 2월 23일 JTBC 뉴스의 한 리포트는 이렇게 시작했다. 기자는 퇴역한 전함 벨파스트호가 뒤로 보이는 강변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리포트의 클로징 멘트는 이랬다. “한때 전 세계의 바다를 제패했던 영국을 ‘메이드 인 코리아’ 군함이 지키게 됐습니다.” 의기양양했다.

한국의 대우조선해양이 영국에 군수지원함 네 척을 만들어 주게 됐고, 수주 총액이 1조원이 넘는다는 뉴스였다. 이탈리아 업체와의 경쟁에서 이겼다는 친절한 설명도 있었다. 그때만 해도 대우조선해양은 자랑스러운 한국의 기업이었다.

1992년 여름, 영국 북동부의 해안도시 뉴캐슬에 갔다. 같은 이름의 닭 전염병 병원균이 발견된 그곳이다. 바닷가의 펍에 들렀는데 동양인이 드문 곳이어서인지 영국인이 “어디에서 왔느냐”고 말을 걸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그가 억센 사투리로 열변을 토했다. “재팬, 코리아” “싸구려(lousy) 배” 등이 띄엄띄엄 들렸다. 요약하면 “일본과 한국에서 우리 기술 훔쳐다가 배를 헐값에 만들어 파는 통에 이 도시가 망했다”는 얘기였다. 괜한 봉변을 당할까 싶어 조용히 펍에서 나왔다.

뉴캐슬(정식 도시명은 뉴캐슬 어폰 타인)은 글래스고와 함께 영국의 양대 조선 기지였다. 지금 한국에서의 울산과 거제가 지닌 위상과 비슷했다. 18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크고 좋은 유람선·화물선은 대개 이 두 도시에서 생산됐다. 전쟁과 불황으로 굴곡이 있었지만 1960년대까지도 명성이 유지됐다. 그러다 일본과 한국의 조선산업이 커가면서 도시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70년대에 영국 정부는 부실 덩어리 조선업체들을 국영화했다. 80년대 후반에는 회사들을 붙이고 쪼개면서 민영화했다. 그 과정에서 전설의 업체들이 사라졌다.

영국인들이 한국을 원망할 때 ‘현실에 안주해 뒤처져 놓고서 누구 탓을 하느냐’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우리는 맨발로 뛰어 당신들을 능가한다’는 자부심을 가졌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도 중국에 따라잡혔다. 따라오는 것을 모르지도 않았다. 뉴캐슬과 글래스고에서 배 기술을 배울 때 ‘여차하면 훅 간다’는 것도 함께 배웠어야 했다. 우리가 안이했다(사족 : 뉴캐슬은 도시 재생사업에 힘입어 최근에 영국 북동부의 비즈니스 중심 도시로 부활했다).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