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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세대 내집 프로젝트 ② 주거 다이어트한 부부] 신도심에서 구도심으로, 역주행한 젊은 부부의 작은 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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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심의 널찍한 삶을 등지고, 살던 집의 절반도 안 되는 크기의 집을 구도심에 지은 부부가 있다. 보통 쾌적한 삶을 좇아 신도심으로 향하는 이사행렬과 반대다. ‘집 평수를 넓히면 넓혔지, 좁혀 못 산다’는 통설을 깬 부부는 “집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며 선언하듯 말했다.

경기도 용인의 빌라 세입자에서 서울 후암동의 집 주인이 된 권희라(38)·김종대(42)씨. 이들은 집을 짓기 위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부모님과 집을 합쳤다. 핵가족시대에 3세대 대가족이 된 것 또한 역주행이다. 부부는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는 저항군이라고 종종 이야기한다”며 “지어진 집에 삶을 끼어맞추지 않고 취향에 맞게 이렇게 집을 지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입 모았다.

서울 후암동에 지은 부부의 집. 지하층은 주차장과 임대용 사무실 공간, 1층은 부부의 사무실, 2층(부모님 집)·3층(본인 집)·4층(가족 거실) 및 옥상은 가족공간으로 디자인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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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아내 권씨와 영화 프로듀서인 남편 김씨는 2010년 결혼했다. 마침 아내가 디자인한 경기도 용인의 다가구주택 꼭대기층(4층)에 저렴하게 세를 얻어 살게 됐다. 두 세대를 합친 면적으로 실평수가 145㎡(약 44평)에 달했다.

남들은 “대궐 같은 집에서 산다”며 부러워했지만 부부는 불편했다. 서울과의 먼 거리로 퇴근 때마다 백화점 식품 코너에 들러 떨이로 음식을 사먹고, 주말마다 대형 마트를 돌며 딸(5)과 노는 삶. 마트에서 ‘1+1’로 파는 물건을 사들여 채우니 집은 금방 뚱뚱해졌다. 게다가 줄여 트는데도 겨울에 난방비가 40만원. 늘 추웠다. 남편은 “가만히 살펴보니 안방ㆍ부엌ㆍ식탁이 있는 공간에서만 우리가 살고 있었다”며 “집이 작아도 사는데 문제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3층 부부의 집. 집은 화장실을 제외한 모든 공간이 뚫려 있다. 작은 집을 넓게 쓰기 위해서다. 부부는 요리를 하면 집 전체가 부엌이 되고, 아이와 놀고 있으면 놀이방이 되는 집을 계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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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을 거쳐 부부는 2013년께 서울 후암동에 대지면적 99㎡(30평)의 단층 구옥을 샀다. 남산 기슭에 1957년 지어진 집이었다. 부부는 서울역, 경복궁 등 서울시내 주요 명소를 걸어서 다닐 수 있다는 매력에 후암동을 택했다. 남산·용산 도서관도 가깝고, 집에서 남산타워가 훤히 보였다. 오래된 동네라 작은 평수의 매물도 꽤 있었다.

아내는 “부동산에 땅보러 다닐 때부터 집의 층별 프로그램을 명확히 짜서 갔고, 아예 철거하고 신축할 생각으로 단층 주택을 주로 봤다”고 설명했다. 아내는 지하층은 주차장 및 임대공간으로 만들고 1층은 부부의 사무실로, 2층(부모님 집)·3층(본인 집)·4층(가족 거실) 및 옥상은 가족공간으로 디자인했다. 신축하는데 3억2000만원을 썼다.

3층 한 쪽의 높이 차를 활용해 딸을 위한 다락방을 만들었다. 다락방 아래는 화장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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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종 일반주거지역이라, 지을 수 있는 공간의 최대 면적은 59.5㎡(약 18평)다. 부부는 ‘집 짓기’를 하며 ‘집 다이어트’를 했다. 삶과 취향을 계속 생각하고 돌아보는 과정이었다. 혼수로 마련한 양문형 냉장고 대신, 빌트인이 가능한 일반형 냉장고를 선택했다. 필요할 때마다 가까운 재래시장에서 사먹자는 생각에서다.

쌓아뒀던 책도 버렸다. 읽고 싶은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자고 정리했다. 부모님집과 부부집인 2~3층은 화장실을 제외한 모든 공간이 트여있다. 침실로 쓰는 작은 방의 한 벽면은 슬라이딩 도어다. 문을 열고 깔았던 매트리스를 걷으면 공간이 하나로 연결된다.

“작은 집에 방을 여러 개 만들어 놓으면 환기랑 채광이 안 좋아져요. 드레스룸·게스트룸 방마다 용도를 정해 놓는 건 미국식이에요. 너무 과잉이죠. 우리 세대는 더 큰 것을 사라고, 소비욕망만 자극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의도치않게 과잉섭취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한옥은 방이 다 작죠. 더 큰 게 필요할까요. 집도 다이어트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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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사는 2층 공간. 한 건물에서 함께 살지만, 독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층별 공간을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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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함께 쓰는 1층 사무실 한 쪽에 피아노가 놓여있다. 유치원을 마치고 온 딸이 피아노를 연주하다, 2층 부모님집으로 올라가곤 한다.

집 짓는 과정은 힘들었다. 형편에 맞지 않게 너무 많은 돈을 썼다는 생각에 후회도 많았다. 하지만 집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4층 통유리로 비쳐드는 달빛에 와인 한 잔, 옥상 툇마루에서 해질 무렵 마시는 맥주 한 잔도 기막히다. 남산이 다 내 것처럼 느껴진다는 집에서 부부는 평화로워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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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사랑하는 옥상에서 남산 타워가 바로 보인다. 부부의 집짓기 여정은 최근 출간한 책 『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으로 일단락됐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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