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는…] 벼랑끝에 몰린 中小병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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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문만 열면 환자는 오고 경영은 된다는 생각으로 개원했던 병원가에 찬바람이 돌고 있다. 더구나 지방 중소병원들은 줄줄이 문을 닫는 심각한 실정이다.

열 곳에 하나 꼴로 일어나는 중소병원의 부도사태, 건강보험관리공단으로부터 받을 진료비 압류 등 지방 중소병원의 경영악화 요인을 살펴보면 단순히 경영 잘못을 탓할 수만은 없는 구조적 문제가 쌓여있다.

지난해 광주.전남에선 7~8개 중소병원이 신축된 이후 올해 새로 생긴 중소병원은 거의 없는 상태다. 지난해 개원했던 병원들도 부도설에 설립자 잠적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서울과 지방을 막론하고 1백병상 미만의 중소병원의 도산은 의료에 거대 자본이 들어오면서 예측돼 왔던 일이다. 여기에 의료산업의 노동집약성, 공익을 우선하는 비영리성 외에도 정치논리에 의한 비정상적 제도와 압력으로 의료분야는 사양산업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생명을 담당하는 내과. 외과.산부인과.소아과 등 4대 주 진료과가 영양가 없는 분야가 된 지 이미 오래다. 그나마 유지해온 개원병원들도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고 있는 일방통행식 제도와 지침 남발로 환자가 급격히 줄고 있다.

병원, 아니 중소병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군 복무를 마치고 의사가 될 준비를 끝낸 전문의는 종합병원이나 중소병원에 근무하며 비로소 종자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리고 저녁 야근, 응급실 근무 등 월급의사로 몇 년간 일한다.

그러나 긴 근무시간, 본인이 없으면 한 발짝도 돌아가지 않는 병원, 수시로 받게 되는 공문서와 지침, 그리고 청구업무 등 답답한 생활을 견디다 못해 몇몇 친구.후배를 모아 병원을 차린다.

이때 투자자금은 개인별 2억~3억원 정도로 이렇게 모은 자금으로 땅을 물색하고 은행빚(부채비율 평균 2백52%)을 얻어 소형 병원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눈감고 생각해도 뻔한 자금력으로 다행히 사업이 잘되면 빚을 갚아 나가며 운영이 될 것이나 초기 환자 확보 실패, 경영부조화로 인한 동료와의 일체감 상실, 초기에 무리한 의욕이 부른 의료 사고 등은 긴 악순환의 시작일 뿐이다.

과잉공급된 전문병원들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광주시에는 29개의 산부인과 그룹 전문병원이 있으나 현저히 줄어버린 출산(出産)시장 탓에 성장능력을 상실한 채 근근이 숨을 쉬고 있다.

대규모 자본이 투자된 수도권 병원, 특히 빅3(서울대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아산병원)로 향한 지방 환자의 유출도 심각한 상황이다.

의료인에 대한 규제와 달리 환자에 대한 규제는 거의 없기 때문에 큰 병이라고 생각되면 환자들은 의료기술의 큰 차이가 없음에도 비용의 많고 적음은 고려치 않고 쾌적한 시설, 경영마인드가 높고 친절한 수도권 병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시골에서 중소도시로, 다시 서울로의 수도권 종속이 의료 분야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열악한 소자본의 개원의나 지방 중소병원들은 서로 피곤한 경쟁관계 속에 고달픈 의료시술을 해나갈 수밖에 없는 깊은 늪에 빠져 들고 있다.

새 정부 들어서도 많은 의료정책에서 정부와 의료인 사이에 절차적 동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문제가 많은 의료 전달체계, 계속되는 일방적 의료수가 책정, 새롭게 등장하는 국립 한방병원 설립안 등 새 정부 의료 정책 역시 의료계의 험난한 여정을 예고하고 있다.

의료정책이 미흡할 때 보게 되는 피해는 아마도 지방 중소병원이 가장 클 것이다. 지방 병원들의 주름살이 깊어지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유용상(미래아동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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