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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장사 빼곤 안해본일 없어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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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살아갈 길이 막막할 때마다 죽은 사람이 부럽기만 하더니 이젠 오히려 죽은 사람이 불쌍해요.』
대한 전몰군경 미망인회가 「장한 어머니」로 뽑은 황양순여사(67)는 6·25당시 남편이 강원도 양구전투에서 전사하는 바람에 어린 6남매의 가장이 되어야했던 기막힌 고생살이 끝에 자녀들을 무사히 키워낸 보람과 기쁨을 이렇게 말한다.
남편이 전사하자 올망졸망한 2남4녀가 「33살의 홀어미」손에 맡겨졌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온가족이 세상을 뜬는게 최선일 듯 싶더라는 것.
『노점 삯바느질을 비롯해서 떡·엿·꽈배기·새우젓·멸치·쌀 등 아무튼 술빼고는 안팔아본게 없어요.』33살에 전사통지서 한장이 되어 돌아온 동갑나기 남편의 죽음을 서러워할 겨를도 없이 추위·더위 가리지 않고 뛰느라 양쪽 볼이 심한 동상에 걸려 지금도 겨울이면 볼이 빠져 나갈 듯 아프고, 여름이면 술취한 듯 붉어진다는 황여사.
『오죽하면 남편이 묻힌 곳을 22년만에야 찾았겠어요? 쉰다섯살이 돼서야 국립묘지의 「육군상병 김춘석의 묘」라고 쓴 비석 앞에 섰더니 남편한테 미안하면서도 「내가 아이들을 이만큼 키웠다우」하고 자랑하고 싶더군요. 게다가 스무번이 넘도록옮겨 다닌 셋방살이도 청산하고 이젠 여엿한 내집까지 마련한 아들과 함께 살고 있으니….』
맏딸은 국민학교 밖에 졸업시키지 못했고, 둘째딸은 그렇게도 가고 싶다는 고등학교를 포기하라고 말리자 너무 상심한 나머지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정도. 그러나 차차 형편이 펴서 막내딸과 두 아들은 모두 고등학교를 나와 장남은 원주시청 공무원으로, 차남은 산업은행 대리로 근무중이다.
전사 당시의 남편과 동갑이 된 막내딸까지 6남매가 모두 결혼하여 손자·손녀가 12명이 된 요즘은 해마다 6월25일에 온가족이 국립묘지로 향하게 되어 황여사를 한결 뿌듯하게 한다고. <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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