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칭송’ 클린턴 비공개 연설, 녹취록 찾는 트럼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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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공화당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가 공히 ‘돈’ 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불어난 돈의 흔적을 꼭꼭 숨기느라 초조해하고, 억만장자 트럼프는 대선 본선의 ‘총알’을 마련하느라 고심하고 있다.

클린턴, 7억9000만원 받고 3회 강연
참석자가 찍은 동영상 등 있나 촉각
‘반 월가’여론 강해 치명타 될 수도
경선에 개인재산 470억 쓴 트럼프
“본선 1조원대 필요” 당 의존 불가피

정치전문매체 ‘더 힐’은 9일 “공화당과 트럼프 캠프가 클린턴이 2013년 월가의 골드먼삭스에서 했던 연설 원고 혹은 동영상을 찾기 위해 전국을 샅샅이 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클린턴은 국무장관을 물러난 직후인 2013년 한 해 동안 골드먼삭스에서 세 차례에 걸쳐 1회당 22만5000달러(약 2억6300만원), 총 67만5000달러(약 7억9000만원)의 거금을 받고 강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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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 민주당 경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왼쪽)이 10일(현지시간)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유세하고 있다. [AP=뉴시스]

공화당으로선 올 대선의 화두가 ‘반(反) 기득권 세력’과 ‘반 월가’로 이어지고 있는 만큼 클린턴의 연설이 ‘월가 칭송’ 일색이었을 경우 클린턴 후보를 ‘겉과 속이 다른’ 후보로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결정타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관계자들의 증언을 인용, “(클린턴은) 골드먼삭스의 상무이사처럼 연설했다” “클린턴은 두 정당(민주·공화)에서 월가의 저명 인사들을 비난하는 이야기들은 ‘비생산적이고 바보같은 짓’이라 규정하며 월가를 극찬했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증거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

더 힐은 “당시 클린턴은 골드먼삭스와 ‘연설 원고를 절대 공개하지 않고, 연설 녹화도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공화당 측은 “많은 (골드먼삭스의) 직원들이 스마트폰으로 비디오를 찍거나 메모를 받아적었을 것이니만큼 언젠가는 입수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를 걸고 있다고 한다. 대선에서 언젠가 터질 시한폭탄이란 이야기다.

공화당은 역으로 2012년 ‘몰래 카메라’로 결정타를 맞은 적이 있다. 당시 밋 롬니 후보가 거액 기부자들과의 간담회에서 “47%의 유권자는 건강보험·음식·집 등 모든 것을 정부가 제공해야 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며 미국인 47%를 소득세를 제대로 내지 않으면서 혜택만을 원하는 ‘정부 의존형 인간’으로 폄하한 비디오 영상이 좌파 성향 잡지에 의해 폭로되면서 롬니는 급추락했다.

AP통신은 “클린턴 부부는 2001년 백악관을 떠날 당시 채무만 128억원으로 ‘완전파산’ 상태였지만 각종 이해단체 대상 강연 등으로 1년 만에 부채를 청산했다”며 “클린턴은 국무장관을 물러난 뒤 남편 빌이 운용하던 클린턴 재단에 참여, 3년 동안 257억원을 거둬들였다”고 분석했다. 또 뉴욕 근교와 워싱턴DC의 저택, 292억원의 뮤추얼펀드를 소유하고 있으며, 카리브해와 뉴욕 인근 햄픈 해변 고급리조트의 단골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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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AP통신과 인터뷰하는 공화당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 [AP=뉴시스]

반면 트럼프는 대선 본선 자금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그는 최근 “공화당 경선에서 개인재산 4000만 달러(약 470억원)를 썼다”며 “본선에서는 15억 달러(1조7500억원)가 필요할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문제는 그가 아무리 억만장자라고 하지만 단기간에 이 정도의 돈을 현금화하기 힘든데다 대선과 상·하원 선거가 동시에 치러지는 만큼 거당적인 자금운영체계를 마련하지 않으면 돈과 조직이 따로 놀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폴리티코는 “트럼프 캠프의 폴 매나포트 등 핵심 관계자들과 공화당 전국위원회의 라인스 프리버스 위원장이 9일 긴급 회동해 자금 모집을 위한 방법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가 공화당 전국위원회의 재정적, 정치적 인프라를 이용하기로 했다”며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기득권층에 맞서는 걸 좋아하지만 선거를 꾸려갈 돈이 시급한 트럼프로선 공화당의 네트워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일단 본선을 위해 10억 달러(1조1700억원)를 모금하기로 목표를 세웠지만 억만장자 코크 형제, 폴 싱어(헤지펀드 매니저) 등 기존 공화당 ‘큰손’들이 뒷짐을 지고 있거나 ‘반 트럼프’ 쪽에 서 있어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10일(현지시간) 웨스트버지니아주 경선에서 민주당은 샌더스, 공화당은 트럼프가 승리를 거뒀다. 공화당의 경우 다른 후보가 모두 경선을 중도포기한 상황에서 트럼프는 압도적 표를 얻어 후보지명에 필요한 매직넘버(1237명)의 90.5% 수준으로 바짝 다가섰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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