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부실」구제 편법은 피해야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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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전략산업이라고해서 집중육성해온 업종치고 부실화되지 않은것이 없다고 한다. 말하자면 정부가 그동안 대규모 부실기업들을 양산해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최근 김만제재무부장관이 한 이야기다.
실제로 중화학공업·해외건설·해운·조선등정부가 한때 집중적으로 지원했던 부문들이 모두 차례차례 부실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당국이 이런 사실을 깨닫는데 어째서 그렇게 오랜세월이 걸리는지 궁금하다.
정부는 결국 부실대출로 경영이 악화된 은행들에 한국은행특별융자를 실시하기로 했다한다.
과거의 정책금융이 낳은 부실기업을 뒷바라지 하느라고 경영부실에 빠진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서 그 부담을 국민들에게 가장 손쉽게 떠맡길수 있는 편법을 쓰겠다는 것이다. 즉 한은특별융자란 돈을 찍어내는 것으로서 인플레이션을 뜻한다.
따라서 이것은 국민의 동의없이 음성적으로 세금을 거둬가는 것이다.
어차피 「쓰러져서는 안되는은행」이며 「너무 크기 때문에 쓰러뜨릴수 없는 기업」 이라면 구제할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을 구제하는데에도 보다 책임있는 방안들이 검토되어야 한다. 가령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정부재산, 국책은행및 국영기업체등을 처분해서 그 자금으로 부실대출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국민에게 부담을 주지않고 정책당국이 모든 것을책임지는 방법이다.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조세·조세감면및 재정지출등 국회의 동의를 얻어 국민에게 부담시키는 방법을 따라야 하겠다. 사실상 명분이 뚜렷하지않은 부담일수록 인플레이션에의한 편법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부실기업문제와 관련해서 그 책임을 분명히 하는노력도 기울여져야 한다. 물론 관련된 당사자들은 누구도 이에대한 책임문제를 논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은행은 그 책임을 한국은행이나 재무부에 전가하고, 그들은 상공부에, 그리고 상공부는 다시 기업에 책임을 전가시킨다. 이런 식으로 아무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동안 똑같은 시행착오는 한없이 반복되게 마련이다. 시행착오가 교육적인 효과가 없다면 무엇인가? 결과는 원인을 규정하고 원인은 의도를 단정하는 것에 불과한 것일까? 이러한 악순환이 끝없이 계속되어서는 안되며 그러기 위해서도 책임의 소재는 밝혀져야 한다.
전략산업·정책금융·부실기업으로 연결되는 대규모 부실대출은 정책당국이 지나치게 규모의 경제를 신뢰하는데에서 생기는것같다. 정부가 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집중지원했기 때문에 규모가 너무 커졌고, 규모가 너무 커졌기때문에 쓰러질수 없는 부실기업으로 되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이 그렇듯이 집중지원이 계속된다면 앞으로도 대규모 부실기업정리는 계속될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산업정책도 개편되어야 한다. 중소기업육성이 중요한 것은 이러한 원인때문이기도하다. 뿐만아니라 부실기업을 거대하게 키우지 말아야한다.
해외건설·해운등 모든 부실기업정리문제는 조기에 수습되지 않고 키울대로 키워놓은 후에 정리함으로써 지나지게 큰부담을 가져왔다. 또거대한 부실기업들이 막대한자원과 자금을 단지 낭비함으로써 경제전체의 능률을 저하시켜 왔다는 사실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끝으로 우리 금융산업의 현안인 부실기업·부실대출문제는 근본적으로 금융규제의 소산이라고 하겠다. 금융기관의 자율경영·책임경영이 보장되며 금리자유화폭이 확대되고 정책금융이 줄었던들 오늘날과 같은 심각한 문제는 없었을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금융시장개방압력이 가중되는 가운데 외국은행 국내지점들로부터 경쟁이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다.
국내은행들의 부실대출문제가 해소되고 금융자율화가 확대되지 않는한 취약한 국내은행들이 그들과 경쟁하기는 극히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부실기업정리와 관련해서 정부의개입은 불가피하며 이것이 오히려 금융자율화를 지연시키고 규제를 강화시킬 가능성도 적지않다. 지난주에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하버드대학의 「벤저먼·프리드먼」교수도 그러한것이 금융규제를 강화하는 구실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충고하지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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