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북 ‘7만자 선언’ 한 날…달랑 1쪽짜리 논평 낸 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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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노동당 7차 대회를 통해 ‘비핵화’‘남북 대화’ 등 민감한 의제를 쏟아낸 8일 서울 여의도 국회는 조용했다.

여당 대표 공석, 김종인은 휴가 중
“국회 교체기라지만 이건 말 안 돼”
외국서 오히려 북 발언 초미 관심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당 제1비서)이 이날 아침 노동신문을 통해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거나 “세계 비핵화 실현에 노력하겠다”는 말까지 했지만 여야는 공식 논평 하나 제때 내놓지 않았다. 여야는 어버이날을 맞이한 논평만 냈다. 그러다 오후 늦게서야 주변의 눈총에 국민의당과 새누리당이 판에 박힌 내용의 서면논평을 내놨다. 7차 노동당대회가 시작된 지난 6~7일만 놓고 보더라도 여야 3당이 각각 1개씩 논평을 내놓은 게 전부였다.

국회 본청 2층에 위치한 여야 1, 2당의 당 대표실은 8일 현재 굳게 잠겨 있는 상태다. 새누리당은 4·13 총선 참패 이후 김무성 전 대표가 직을 내려놓으면서 꽤 적지 않은 시간을 폐점 상태로 보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지난 5일부터 10일까지 휴가를 떠난 상태라 문이 닫혀 있는 중이다.

국회가 이렇게 붕 떠 있다 보니 안보와 관련한 당정 협의는 물론 관련 상임위원회 일정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국방위원회는 새누리당 정두언 위원장이 20대 총선에서 낙선했고, 정보위원회는 위원장인 주호영 의원이 새누리당을 탈당한 이후 위원장이 공석 상태라 ‘학업’에 뜻이 없다. 외교통일위원회 나경원 위원장 정도가 “내일(9일) 위원회 개최가 가능한지 살펴보겠다”고 말한 게 고작이다.

북한이 쏟아낸 메시지 중 “남북 화해에 저촉되는 법률·제도를 없애라”는 것은 국회와 직접 관련이 있는 사항이기도 하다. 지난 14대 때(1992년)부터 근무했다는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북한에서 국내 여론 분열을 자극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이기 때문에 국회 차원의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지 않으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며 “아무리 국회가 교체기라고 해도 36년 만에 열린 북한의 7차 노동당대회에 이렇게 무관심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이전(6차) 노동당대회는 80년 10월 10일부터 닷새간 열렸다. 당시엔 비상계엄 상태로 국내 정치권이 사실상 그 기능을 못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당시엔 국회 차원의 대응도 없었다고 해도 국회를 탓할 순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한반도 주변 정세와 관련한 문제인데도 심도 있는 논의는커녕 제때 안보 논평 하나마저 못 내고 있다.

외신들은 북한의 노동당대회를 긴급뉴스로 타전하며 연일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미국 백악관도 6일(현지시간)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포기와 도발행위 중단을 촉구하는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당사자인 한국 국회는 ‘강 건너 불구경’ 식이다. 과연 뭐라고 국민에게 핑계를 댈 것인가. 국회의 춘면(春眠·봄잠)이 길어도 너무 길고, 깊어도 너무 깊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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