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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뼈 깎는 쇄신 대신 충성 맹세…‘도로 친박당’ 된 새누리 총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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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진석 원내대표의 성공이 곧 우리 당의 성공이고 박근혜 정부의 성공, 대한민국의 성공입니다.”

김광림 “담뱃값·FTA 주도 등
여론 무시한 사람들 낙선” 논란도

9일 오후 2시 국회 본청 246호. 새누리당 당선자 총회에서 새 원내수석부대표로 임명된 친박계 김도읍 의원이 이렇게 말하자 주변이 술렁거렸다. 원내대표 선출 후 당의 진로를 논의하는 첫 자리에서 신임 원내수석이 ‘뼈를 깎는 쇄신’ 대신 원내대표의 성공을 먼저 말했기 때문이다.

당 사무처 당직자는 “지금 저런 충성맹세 같은 말을 할 때가 아닌데…”라며 당혹스러워했다. 다른 당직자는 “새로 임명된 원내부대표단 명단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새누리당이 ‘도로 친박당’이 돼 가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원내지도부의 ‘친박’ 색채는 한층 짙어졌다는 게 당내 다수의 평가다. 김 원내수석부대표뿐 아니라 청와대 대변인 출신 민경욱 당선자가 공동 원내대변인을 맡았고,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을 지낸 이양수 당선자가 공동 원내부대표 명단에 올랐다.

강석진 원내부대표는 최경환 원내대표 시절 그의 비서실장 출신이며, 이만희 원내부대표도 최 의원의 대구고 후배다. 원내부대표 가운데 최연혜·김정재·성일종·정태옥 당선자 등도 친박계에 가깝다는 게 정설이다. 새로 선임된 원내부대표단 13명 가운데 중도·비박계 인사는 오신환·김성원 당선자 등 달랑 2명뿐이다.

그러다 보니 당을 싹 다 뜯어고치겠다는 긴장감도 사라지고 있다. 전날 당선자 총회에서 일부 초선 당선자가 휴대전화로 ‘국회 입성 기념 셀카’를 찍는 장면이 보였고, 토론장에서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 조는 당선자들도 눈에 띄었다. 당 관계자는 “멀리서 보면 대학 새내기들이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자리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고 혀를 찼다.

이날 정 원내대표가 “당의 미래를 위해 끝장토론을 하자”고 했지만 토론도 고작 2시간여 만에 끝났다. 김무성 전 대표, 최경환 의원 등 주요 인사들은 불참자 명단(총 39명)에 들어갔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말조심도 하지 않았다. 김광림 정책위의장은 10일 초선 당선자들에게 “여론을 무시하고 급하게 가는 사람은 (선거에서) 떨어지더라. 담뱃값 인상할 때 주도한 분, FTA(자유무역협정) 주장했던 분이 다 낙선했다”고 말했다. 당 관계자는 “담뱃값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고 법안도 냈던 김재원 의원과 김종훈 의원을 말한 것 같은데, 그럼 한·미 FTA가 잘못됐다는 얘기인지 뭔지 모르겠다”고 갸우뚱했다.

바깥에서도 이런 기류가 읽혀졌는지 10일 새누리당 초선 의원 연찬회에 강연자로 나선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반성 없는 180석보다는 반성하는 120석이 훨씬 낫다. 이렇게 반성하지 않는 정당이 내가 몸담았던 정당이 맞나.”

벌써 총선 참패의 아픔을 잊은 거라면 새누리당의 망각 증세는 심해도 너무 심한 수준이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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