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 살균제 실험 유해성 입증되자 폐기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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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판매업체인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의 영국 본사 관계자들이 2011년 서울대의 실험 결과 발표로 제품의 유해성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한 첫 구속자가 된 서울대 수의대 조모(57) 교수의 변호인이 8일 연 기자회견에서다. 7일 구속 수감된 조 교수는 옥시 측으로부터 금품을 받고 조작된 가습기 살균제 실험 보고서를 만든 혐의(수뢰 후 부정처사 등)를 받고 있다.

서울대 교수 측 “본사도 독성 알아”
“원자료 받아가 불리한 내용 삭제”

조 교수 측의 김종민(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2011년 11월 서울 여의도 옥시 한국법인 본사에서 옥시가 의뢰한 1차 실험(생식독성 실험)의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한국법인 대표 거라브 제인(47)과 영국 본사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담당자,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변호사 등이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가 제시한 당시 발표자료에는 ‘생식독성 실험에서 임신한 어미 쥐 15마리 중 13마리의 배 속에서 새끼 쥐가 사망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김 변호사는 “발표 후 옥시는 본인들에게 불리한 1차 실험 결과를 감추면서 2차 실험(흡입독성) 보고서를 따로 작성해 달라고 조 교수 측에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조 교수 연구팀은 2차 실험에서 “폐섬유화(폐가 딱딱하게 굳는 증상)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다른 장기에 영향을 끼치는 전신독성 유발 가능성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이후 옥시가 연구팀으로부터 실험 원자료를 받아간 뒤 제품 유해성에 관한 내용은 빼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보고서 요약본을 만들어 검찰에 냈다는 것이 조 교수 측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RB코리아 관계자는 “그런 주장에 대해 일일이 반박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9일 신현우(68) 전 옥시 대표, 전 옥시 연구소장 김모씨 등을 불러 조 교수 측 주장의 진위를 확인할 계획이다.

김 변호사는 조 교수가 옥시로부터 개인계좌로 받은 1200만원에 대해서는 “실험과 관련한 정당한 자문료이고 소득신고를 하고 세금도 냈다”고 해명했다. 지난 4일 조 교수가 긴급체포된 데 대해서는 “압수수색 과정에서 조 교수가 가족·제자 등에게 유서를 써놓았음을 안 검찰이 신변 보호를 위해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조 교수가 옥시의 청탁을 뿌리치지 못하고 보고서를 조작하고 증거를 인멸했음을 보여주는 단서를 충분히 확보했기 때문에 체포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장혁진 기자 analo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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