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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에 모인 축구 신동 1000명…“10년 뒤 공한증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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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중국 저장성(浙江省) 성도 항저우(杭州)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미래 도시’라 불린다. 글로벌 전자상거래기업 알리바바 본사를 비롯한 대규모 IT 단지와 중국 3대 대학으로 손꼽히는 저장(浙江)대 등이 항저우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축구굴기 현장을 가다 <하>

최근에는 중국 수퍼리그(프로 1부) 소속 지역 연고 클럽 항저우 뤼청(綠城)이 ‘미래 아이콘’으로 주목 받고 있다. 지난달 중국 정부가 축구협회와 함께 발표한 ‘2030년 아시아 넘버원, 2050년 세계 넘버원’ 목표를 실현할 선봉장으로 중국 축구계는 항저우를 첫 손에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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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뤼청 소속 유소년 선수들이 축구학교 건물이 바라다보이는 그라운드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중국 전역에서 모여든 1000명의 유망주가 이곳에서 축구를 배우며 축구굴기를 꿈꾼다. [항저우=송지훈 기자]

지난달 22일 방문한 구단 클럽하우스는 항저우시(市) 서쪽 외곽, 부호들의 별장이 밀집한 고급 주택단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2004년 문을 연 이곳은 축구장 9면과 실내훈련장 등 부속 건물, 3개 동의 기숙사, 초·중·고 선수들과 교사들이 거주하는 축구학교 등으로 구성돼 있다.

12세 이하(U-12) 팀을 시작으로 U-15, U-17, U-19, 프로 2군, 프로 1군까지 5단계의 팀을 운영한다. 전국에서 선발된 1000여 명의 축구 유망주들이 이 곳에서 먹고 자면서 축구를 배운다. 유스팀 출신으로 1군에서 활약 중인 미드필더 천중류(陳中流·23)는 “항저우 축구학교에 입학하려면 운동 능력 뿐만 아니라 지능·판단력·사고력 등 종합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면서 “초등학교 3학년부터는 학비와 생활비 전액을 면제 받는다”고 말했다.

항저우를 운영하는 뤼청그룹은 수퍼리그 우승권 강호 상하이 선화(上海 申花)의 모기업인 뤼디(綠地)그룹의 건설 라이벌이다. 아파트와 고층 빌딩·병원·호텔 등 대규모 건물을 짓는다.

축구단 운영 방식은 정반대다. 우승을 목표로 연간 1000억원 이상을 투자하는 뤼디그룹과 달리 연 예산이 400억원 정도다. 수퍼리그 16개 구단 중 옌볜 푸더(延邊 富德·500억원)와 함께 운영 예산이 가장 적다. 그럼에도 항저우가 꾸준히 수퍼리그에서 경쟁하는 비결은 좋은 선수를 끊임없이 길러내는 데 있다.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홍명보(47) 항저우 감독은 “1군 엔트리 30명 중 23세 이하 선수가 16명이다. 매년 핵심 멤버들이 빅 클럽에 줄줄이 팔려가지만 새로운 유망주들이 그 자리를 메운다. 중국 올림픽팀 멤버 중 5명, U-19 대표팀 멤버 중 6명이 항저우 유스 출신”이라고 말했다.

중국동포 유봉 코치는 “광저우는 유소년 2만 명을 가르치는 매머드급 규모로, 항저우는 각급 대표팀 멤버를 다수 배출한 소수 정예 시스템으로 각각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특이하게도 항저우 유스 시스템의 뼈대는 일본인들이 세웠다. 오카다 다케시(60) 전 일본대표팀 감독이 유소년 총괄 감독으로 활약 중이다. 홍명보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1군과 중국인 감독이 이끄는 U-19팀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연령대 선수들을 일본 지도자들이 가르친다.

클럽하우스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동안 중국어 뿐만 아니라 일본어와 한국어·영어 등 다양한 언어를 접할 수 있었다. 퉁후이민 항저우 사장은 “1998년 창단 이후 항저우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뛰어난 중국 선수를 키워 중국 축구 성장에 기여한다’는 것”이라면서 “오랜 시행착오 끝에 유럽이나 남미보다는 가까운 아시아 축구의 성공사례를 따르는 게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일본 시스템 도입을 결정했다. 우리도 언제든 유럽 빅리그의 스타 선수들을 데려올 수 있지만 그건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홍 감독은 “항저우가 수준 높은 유스 시스템을 갖추기까지 10년이 걸렸다”면서 “이제는 다른 팀들도 선수 육성의 중요성에 눈을 뜨는 분위기다. 10년 뒤 중국 축구는 공한증을 넘어 더욱 무서운 존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항저우=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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