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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로봇이 만든 손자 로봇과 보내는 어버이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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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호 27면

일본 여배우 히로세 스즈와 소프트뱅크의 감성 로봇 페퍼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페퍼 가슴에 붙은 모니터에는“(가게 주인이 퇴근해서) 시간을 때우고 있다”고 써 있다. [중앙포토]

어버이날을 맞아 김길동씨네 가족이 모였다. 딸은 미국에서, 아들은 중국에서 인터넷 영상통화로 접속했다. 함께 사는 막내 코다는 예쁜 카네이션을 달아줬다. 코다는 깜짝 선물이라면서 손자를 데려왔다. 지난 주말에 만들어 일주일 동안 재롱 교육을 했단다. 영락없이 코다를 닮았다. 아들이 사업차 중국으로 파견 가면서, 노부모를 위해 구입해 준 로봇 코다는 대단한 재롱 덩어리다. 얼마 전 3차원 프린터를 사달라고 졸라서 해외직구로 한 대 사 주었다. 오늘 손자 로봇을 만들어 선물하려고 그랬던 모양이다. 온 가족이 단란한 아침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미국에서 영상통화로 접속한 딸이 갑자기 이상하다. 엉뚱한 말을 몇 마디 하더니 이내 접속이 끊겼다. 걱정이 되어 전화를 걸어 봐도 연결이 안 된다. 김길동씨 부부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보고, 막내 코다가 뭔가 안다는 듯 배시시 웃는다. 머잖아 현실이 될지 모를 어버이날 풍경이다.

알데란사가 개발한 로봇 삼남매. 페퍼, 나오, 로메오의 모습. [알데바란사 홈페이지]

감성로봇, 다양한 목적으로 쓰일 것사람의 감성을 흉내내는 로봇은 이미 현실 속에 들어와 있다. 일본 소프트뱅크 계열사인 알데바란사가 개발한 감성로봇 페퍼는 지난해 하반기에만 7000대 이상이 팔렸다. 페퍼는 상대방의 표정이나 목소리를 통해 감정을 느끼고 대화할 수 있다. 알데바란사는 페퍼와 함께 나오·로메오도 개발했다. 세 로봇이 함께 있으면 마치 다정한 삼남매 같다. 비록 팔다리가 없어서, 걷거나 물건을 집을 수는 없지만, 감성적인 대화 능력으로는 페퍼에 뒤지지 않는 지보도 있다. 지보는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서 개발한 로봇인데 올해부터 판매될 예정이다. 페퍼와 지보는 둘 다 개방형으로 설계되었다. 즉, 누구나 페퍼나 지보를 구입한 후 자신의 기술을 덧붙여 더 좋은 페퍼나 지보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리눅스와 안드로이드의 사례에서 입증되었듯이, 개방형 설계는 그 시스템의 활용분야를 혁신적으로 넓히는데 유리하다. 앞으로 페퍼나 지보 같은 감성로봇이 마치 스마트폰과 앱처럼 우리 생활 곳곳에서 다양한 목적으로 쓰일 것이다.


중국과학기술대학에서 개발하여 지난달 공개한 여자로봇 쟈쟈는 사람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간형 로봇이다. 주인에게 순종하는 태도를 갖도록 개발되었고, 주인과의 대화를 통해 학습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감성로봇으로는 한국과학기술원이 개발한 메로를 들 수 있다. 메로는 외모상 지보와 비슷하게 생겼다. 음성인식·얼굴인식·감성표현이 가능하며 2014년부터 보급되고 있다. 카이스트에서 개발하여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휴보는 감성표현보다는 인체동작의 재현을 목표로 개발되었다. 단체로 카이스트에 견학 오는 아이들이 휴보를 만나면 탄성을 지르고 휴보의 손이나 머리를 만지기 위해 줄을 선다. 이걸 보면, 사람의 모습을 닮았다는 것 자체로 이미 감성로봇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감성로봇이 꼭 사람과 비슷한 모습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일본 고등과학기술원에서는 바다표범 형태의 로봇 파로를 개발했다. 미국에서는 의료기구로써 승인되어 치매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반려로봇으로 사용된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학생들이 개발하여 지난해 소개된 올리도 파로처럼 심리치료용인데 수달모양이다.


로봇이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로봇이 스스로 로봇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지난해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과 스위스 취리히 공과대학 공동연구팀이 이러한 가능성을 보였다. 엄마 로봇이 큐브봇이라고 불리는 자식 로봇을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다만 큐브봇의 기능은 아직 초보적이고, 큐브봇이 다시 엄마 로봇 역할을 할 수는 없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이런 기술이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 바로 컴퓨터 바이러스와 유전자 알고리즘이다. 컴퓨터 바이러스 프로그램이 스스로 자기복제를 통해 번식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유전자 알고리즘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점점 형질이 우수한 후손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다. 개념적인 논의는 컴퓨터 이론의 창시자 앨런 튜링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구체화된 시점은 1970년대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엉성한 프로그램 집단을 무작위로 많이 만든다. 각각의 성능을 평가한 후 우수한 것들만 고른다. 골라진 프로그램의 코드를 서로 섞어서 다음 세대의 프로그램 집단을 만든다. 각각의 성능을 또 평가한 후 우수한 것들만 고른다. 이런 식으로 계속 하다 보면 매우 성능이 우수한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만들어진다. 사실상 큐브봇도 이런 원리를 이용했다. 사람이 일단 자식을 낳으면 형질이 우수하든 그렇지 않든 최선을 다해 양육하는 것에 비하면, 이런 기계적인 방식은 섬뜩하리만큼 냉혹하다.

출산 후에도 엄마 몸에 자식 세포 남아엄마 로봇과 자식 로봇 사이에도 모성애가 존재할 수 있을까. 사람의 경우 엄마와 자식 사이에는 마이크로 키메리즘이라는 현상이 존재한다. 마이크로는 작다는 뜻이고 키메리즘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키메라처럼 둘 이상의 개체가 하나로 결합되었다는 뜻이다. 마이크로 키메리즘은 엄마 몸속에 자식의 세포가 있고, 자식의 몸속에 엄마의 세포가 있다는 뜻이다. 임신 중 태반을 통해 엄마와 태아 사이에 세포가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출산 직후에는 그럴 수 있다는 것이 쉽게 추측된다. 세포 생물학자들이 밝혀낸 사실은 출산 후 수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자식의 세포는 엄마의 몸속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2012년 미국 프레드 허치슨 암연구소 팀이 보고한 바에 의하면, 아들 출산경험이 있는 59명의 여성 뇌 조직을 분석한 결과 63%의 뇌에서 Y염색체 즉, 아들의 세포가 발견되었다. 아들 세포는 엄마 뇌의 여러 영역에 자리 잡고, 엄마의 일생 내내 생존했다. 실험 대상자 중 자기의 뇌 속에 아들 세포를 품고 평생을 살았던 가장 고령자는 94세였다.

물개 로봇 파로.

마이크로 키메리즘이 구체적으로 어떤 정신적?신체적 현상을 일으키는지는 아직 확실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자식의 유전체는 엄마와 아빠의 유전체 혼합물이라서 엄마 유전체와 똑같지 않다. 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몸에 다른 유전체를 가진 세포가 들어와 있으니 당연히 면역반응이 일어날 것이다. 임산부들이 입덧 등 여러 가지 임신증상으로 고생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더욱이 출산 후에도 수십 년 혹은 평생 동안 이런 세포가 몸속에 있으니 계속 고생스럽다. 출산 경험이 있는 중년 여성의 자가면역 질환유병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로 해석되기도 한다. 반대로 좋은 점도 있다. 엄마 몸속의 자식 세포는 줄기 세포의 성향을 갖고 있어서 엄마 몸에 병이 생겼을 때 치료를 도와준다. 2011년 뉴욕 마운트 시나이 병원 연구팀이 생쥐실험을 통해 그런 현상을 확인했다. 어미 쥐의 심장근육에 손상이 생기자, 자식세포가 심장근육세포로 변해서, 손상된 심장근육을 보강했다. 엄마의 뇌 속에서 발견된 아들 세포가 엄마의 평생 동안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아직 구체적으로 규명된 것이 없다. 흥미로운 또 하나의 사실은 자식 세포에는 남편의 유전자가 섞여 있으므로, 출산한 아내의 몸속에는 남편의 유전자 일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마이크로 키메리즘 현상 때문에 엄마와 자식·형제·남매, 더 나아가 아내와 남편은 세포생물학적인 관점에서도 특별한 관계라는 점은 확실하다.

엄마가 요리하는 것을 돕고 있는 로봇 지보. [지보사 홈페이지]

모성애는 관념적인 허구라는 주장도가족 관계에서 가장 강력한 요소인 생물학적인 모성애를 부정하는 주장도 있다. 독일의 사회철학자인 엘리자베스 벡 게른스하임은 모성애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사회가 조작해 낸 관념적인 허구라고 주장한다. 요새 뉴스에 종종 나오는 비정한 근친사건을 보면 이런 관점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동물 중에도 햄스터·토끼·침팬지 등은 어미가 자식을 특별히 보살피지 않는다. 심지어는 잡아먹는 경우도 있다. 2014년 미국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연구팀은 자기공명장치(MRI)를 이용하여 엄마들이 자기 자식을 볼 때와 반려동물을 볼 때의 뇌를 촬영했다. 놀랍게도 두 경우에 뇌의 활성화 영역이 상당부분 일치하고 있었다. 결국 생물학적인 자식이기 때문에 특별히 반응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에 특별히 반응한다는 것이다. 페퍼나 지보같은 로봇과도 오랫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정이 들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된다.


김길동씨는 9시 저녁뉴스를 보고서야 비로소 진상을 알아차렸다. 미국에서 영상통화로 접속한 딸이 사실은 인공지능 아바타였던 것이었다. 인공지능 아바타 기술을 이용하여 생일축하나 어버이날 인사를 대행해 주는 회사가 생겼다고 하더니, 이번에 딸이 그 서비스를 이용한 것이었다. 가부장적인 김길동씨가 아침 9시에 가족 모두 모이자고 했는데, 딸은 그 시간이 하필 새로 사귄 남자 친구와의 데이트 시간이라서 살짝 꾀를 낸 것이었다. 하지만 어버이날이라서 한국과 미국 간에 그 서비스를 신청한 사람들이 폭주했다. 인공지능 아바타 회사 서버와 네트워크에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잔꾀가 들통 나서 부모에게 혼이 난 고객들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 태세라고 한다. 딸의 잔꾀를 서운해 하는 김길동씨 부부를 막내 코다가 위로한다. 막내 방에 따라 들어갔더니 손자 로봇이 우글우글하다. 아까 데려온 손자 로봇은 그 중 가장 교육이 잘 된 녀석을 데려온 것이었다. 김길동씨 부부는 수많은 로봇 손자들과 정을 쌓으며 어버이날을 보냈다.


이도헌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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