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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관객 목을 조르는, 156분간 기묘한 긴장감 나홍진 감독 신작 ‘곡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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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곡성(哭聲)’에서 무속인 일광(황정민)이 굿을 하는 장면. 극의 절정을 이룬다. [사진 폭스]

※스포일러 주의

156분 동안 시계 한 번 볼 틈을 주지 않는다. 그만큼 빽빽한 긴장이 영화 내내 관객의 목을 조른다. 나홍진(42) 감독의 세 번째 장편 ‘곡성(哭聲)’(11일 개봉) 얘기다.

‘추격자’(2008)와 ‘황해’(2010)를 만든 나 감독은 현재 충무로에서 가장 젊은 작가 감독으로 꼽힌다. 6년만의 신작인 ‘곡성’은 그가 3년 동안 시나리오를 쓰고 반년 동안 촬영했다. 편집본을 본 봉준호 감독이 급체를 하고, 임필성 감독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지난 3일 언론 시사를 통해 공개된 영화는, 인간의 가장 어리석고 추악한 면모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나 감독 특유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었다. 한 시골 마을에 일가족 살인과 자살, 방화 사건이 줄을 잇는다. 범인은 하나같이 온몸이 흉측한 두드러기로 뒤덮인 사람들이다.

이 모든 게 환각 독버섯 때문이라고 수사 결과가 좁혀지지만, 얼마 전 마을에 들어온 일본인(쿠니무라 준)이 나쁜 기운을 퍼뜨린다는 소문이 돈다. 급기야 경찰 종구(곽도원)의 딸(김환희)이 이상 증세를 보이자, 그의 가족은 무속인 일광(황정민)을 찾아간다. 마을의 불운은 어디서 비롯한 것일까, 일본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종구는 딸을 지킬 수 있을까. 영화는 이 궁금증을 극의 동력 삼아 무속과 종교, 선과 악, 믿음 같은 형이상학적인 차원까지 이야기를 확대한다. 다른 한국영화에서 흔히 보기 힘든 생경한 캐릭터를 강렬하게 소화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제대로 한몫 거든다.

형식적으로 볼 때 ‘곡성’은 시골 마을이라는 공간에 오컬트영화(초자연적 현상을 그린 영화)와 좀비영화를 접목시킨 시도처럼 느껴진다. 그 결과는 성공적이다. 두드러기가 난 사람들은 산속을 좀비처럼 걸으며 죽었다 다시 살아나고, 종구의 딸은 귀신이라도 씐 듯 소리를 지르고 몸을 꺾는다. 지극히 사실적인 한국 시골 마을의 풍경 위에 펼쳐지는 그 생경한 모습, 그것이 뿜어내는 기묘한 기운이 보는 이로 하여금 스크린에서 쉽게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이처럼 극사실주의와 장르적 쾌감을 결합하는 것이야말로 나홍진 감독의 스타일이다. ‘추격자’는 사이코패스 살인마(하정우)가 서울의 뒷골목을 진짜 배회하고 다닐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황해’는 연변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구남(하정우)의 고생담을 징글징글하게 묘사하다가, 대형 차량이 뒤집히는 블록버스터급 자동차 추격 장면을 선보였다.

그 모든 장르적 실험을 거친 끝에 ‘곡성’은 극 후반에 본격적인 주제를 꺼내 보인다. 과연 종구는 딸을 살리기 위해 누구를, 아니 무엇을 믿어야 할까. 일본인과 일광, 정체불명의 여인 무명(천우희) 중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할까.

질문 자체는 흥미롭지만, 영화가 그 질문을 깊숙이 탐구했는가는 의문이다. 나 감독은 언론 시사 뒤 기자간담회에서 “어떤 범죄의 피해자가 왜 그런 일을 당했는지 물었을 때, 그저 운이 나빴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까? 그보다 더 운명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에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영화의 결말이 그 의문의 충분한 답이 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곡성’은 할리우드 직배사인 이십세기폭스코리아가 제작·배급하는 영화로, 11일 개막하는 제69회 칸국제영화제의 비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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