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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문화」·「TV사치」이대로좋은가|"잔치 일변도" 그개선 방향을 모색해 보는 좌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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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최근 소비지향적이고 떠들썩한 잔치놀음이 마치 우리놀이 문화의 주류인양 인식되고 있다. 지난달 4일 첫선을 보인 서울의 대학로는 떠들썩한 난장판이되어 있고, TV는 매일 화려한 오락물을 방영하고 있다. 사회에 만연돼있는 잔치일변도의 기형적인 놀이문화현상을 우려하며 그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해본다.
여동찬교수=한국 민속놀이의 특징은 자연발생적이라는 것입니다. 놀이란 자연스럽게 모여서 하고 싶은것을해야 신뎡이 나는 법이지요. 따라서 「국풍81」이나 대학로등과 같이 모여서 어떻게 해라하면 부작용이 더 많다고 봅니다. 최근 대학로에서의 어지러운 놀이판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호철씨=정확히 보셨습니다. 우리 민족만큼 춤 잘추며 흥겹게 잘노는 민족도 드물거예요. 그런데 어거지로 이렇게 저렇게 해보겠다는 어설픈 관주도의 문화가 오히려 문화의 공백현상을 가져온다고 봅니다. 어거지로 하려니까 거꾸로 퍼져나가는 현상이지요.
여=옛날에는 모였으니 놀자는 것이었는데 요즘은 놀기 위해서 모이자는 식이에요.

<자연스럽게 모여야>
이경자교수=놀이 문화의 기능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못하고 있는 탓으로 봅니다. 단조로운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는데 오락의 의미가 있는데 억지오락은 오히려 흥미를 떨어뜨릴 우려도 있습니다.
이호=문화란 살아가는 모습 그자체입니다. 이를 인위적으로 조장하려다보면 더큰 부작용을 낳게 되지요.
여=문화에 대한 인위적인 조정도 장기적인 안목에서라기보다는 어떤 다른것을 잊게하려고 드는게 많은것 같습니다.
이경=문화는 마땅히 창조하고 활동하는 사람이 그주체가 돼야지요. 그저 대학로 하나 만들어놓고 젊은이들더러 모여서 놀으라고 하니 그같은 사태를 빚게 된것입니다. 젊은이들 자신이 대학로 문학의 주체라는 생각을 못하는 것이지요.
여=프랑스에도 대학로 비슷한 곳이 있읍니다. 「퐁피두」기념관 광장이 그것인데 시당국에서 주관한게 아니라 젊은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이룩됐습니다. 마술사가 마술을 보여주기도 하고, 여러나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민속음악을 연주하기도 합니다.
이경=조선시대 백자에서 볼수있듯이 우리 문화의 본질은 화려함과 요란함보다는 소박함과 자제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조금 지나면 대학로가 그 본연의 기능대로 갈 옴직이리라고 봅니다.
이호=저는 우리문화의 특질을 균형감각으로 보는데 놀이문화도 마찬가지지요. 들에서 농사지으며 자연스럽게 놀아야하는데 젊은이들 스스로가 그곳 문화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할때까지 기다려야지요.
여=대학로가 개통된지 한달도 채안됐는데 벌써 무슨 열매가 맺길 기대해선안되지요.한국사람들은 성미가 조급한 편인데 조금참고 기다렸으면 합니다. 통행금지를 없앨때도 얼마나 걱정이 많았읍니까. 요즘은 오히려 통행금지 해제전보다 조용하지 않습니까.
젊은이들이 시끄럽게 난리를 피우는것은 흥미위주의 오락물을 많이 방영하는 TV의 영향도 크다고 생각하는데요.
이경=그렇습니다. TV가 그릇된 놀이문화를 더욱 어지럽게 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에게 TV는 이미 세상을 인식하고 확인하는 귀중한 창구가 되어있는데 이TV가 상업적이고 화려한 오락물을 마구 쏟아놓고 있으니 그 해독이 걱정됩니다.
편성방침상으로는 교양을 우선적으로 내세우면서도 황금시간대를 드라머나 쇼위주의오락물로 채우고 있으니 이러다가 사람들이 세상을 일보다는 놀이중심으로 보지않을까요.
여=미스코리아선발대회와 전야제등을 공영방송에서 황금시간대에 방영하는것도 큰문제입니다. 공영방송은 모름지기 국민정신을 잘 이끌어가도록 해야지요.

<예술 외면한 tv쇼>
이호=『주적』 『고발』등 심층분석프로등은 사회현상을 비춘다는 점에서는 높이 살만하지만 술집 카바레의 현장등을 여과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줘 청소년들이 이를 모방할 우려가 많습니다.
도시에 사는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층격적인 모습보다는 오지나 사회의 그늘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 이읏들의 모습을 조명하는게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여=드라머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세계의 인물을 그리고 있는게 많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끌어가면서도 감동을 주도톡 해야지요. 사치스러운 드라머는 오히려 보는이로 하여굼 계층간의 위화감을 느끼게할 우려가 있습니다.
이경=오락물도 큰 문제지요. 상업적이고 화려하게 치닫고 있는 오락프로는 시청자들의 문화취향을 엉뚱한 방향으로 오도할 우려가 있읍니다. 또 그러한 문화적 욕구를 채우지 못하는 계층의 시청자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껴 본래 의도했던 사회구성원의 통합보다는 유리현상을 가져오게 됩니다.
여=TV쇼도 현란한 무대와 의상조명에 앞서 예술성을 강조해야 할것입니다. 한국의 쇼는 예술성보다는 사치와 저질로 가고 있는것 같아요. 그것을 즐겨보는 걺은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문화적 배경에 빠져드는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어요. 특히 경계해야 할것은 이러한 쇼프로등이 무슨행사나 기념일이면 무분별하게 꼭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이호=그렇습니다. 그러니 일반사람들은 무슨 행사나 기념일의 의미를 되새기기 보다는 화려한 쇼에 취해 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그런후 무슨 놀이때면 그것을 흉내내게 되는 것이지요.
이경=요즘 KBS 제1TV의 『전국노래자랑』이란 프로를 즐겨 봅니다. 놀라운 사실은 대부분의 출연자가 TV를 통해 본 가수나 연예인들의 몸놀림을 그대로 흉내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시골벽지일수록 더욱 두드러집니다. TV의 영향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지요.
이호=농민들도 쌀값걱정 비료걱정 농약걱정으로 한숨을 쉬다가도 TV를 통해 드라머 쇼 스포츠등울 보면서 자신의 문제를 깡그리 잊고그저 생각없이 하루릍 보내게 됩니다. 시시콜콜 따지지말고 그저 즐거운 TV프로나 보면서 살라는 거지요.
이경=단기적으로 보면 그저 잊고 살수 있겠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상대적인 박탈감이나 계층간의 유리현상은 더 깊어지는게 아닐까요.
여=근래에 풍년이 아닌데도 풍년놀이를 하라고 하고 TV에서도 거대한 잔치를 벌인다고 하더군요. 그러다간 사람들이 온통 떠들고 화려한 잔치만이 놀이문화라고 생각할까 걱정이 됩니다.

<문화의 황폐화 우려>
이호=『××제』라고 이름지어지는 대형 축제행사도 줄여야 합니다. 내용없는 전시용과시용 문화행사가 너무많아요. 어거지로 크게 떠벌리는 문화행사는 문화를 살찌우기 보다는 문화의 황폐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더큽니다.
이경=문화란 본래가 개인적인 성질이 강한것이지요. 대형화된 놀이문화는 놀이를 통한 감정의 순화도 어려울뿐아니라 그속에서 인간은 자신을 점점더 작게 느끼게 되지요. 대형문화축제는 문화의 발달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무책임한 문화표현형태입니다.
여=며칠전에 경남 하동 남해 일대를 다녀왔읍니다. 군경소재지인데도 변변한 오락시설 문화시설 한군데없더군요. 주민들이 건전한 놀이를 즐길수있는 운동장 극장등의 시설이 빨리 마련돼야 하겠습니다.
이호=실속없는 대형 잔치놀이행사를 벌이느니 지방에 문화시설 한군데라도 더마련하도록 해야지요.
이경=문화의 대형화추세는 필연적으로 문화의 휙일화와 집중화를 부르게 됩니다. 서울에 동양최대 예술의 전당을 세운다고 하는데 그것도 결국 일부 계층의 독점물이 될뿐이지요. 그것보다는 지방에 자그마한 문화시설을 설치하는게 문화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여=그렇지요. 문화정책을 전시효과정책으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문화만이라도 지방자치를 해야할 것입니다.
이호=이제 노는것도 양극화된것 같습니다. 한폭판은 픗고추안주에 막걸리를 마시며 울분을 토로하는가 하면,다른 한쪽에서는 날새는줄 모르고 향락을 즐깁니다.
이경=대학가에도 양극화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현실을 거부하는 강렬한 몸짓의 표현으로 꽹과리를 치면서 탈춤을 추는가하면, 한폭에는 자가용을 몰고 등교해서 「지난밤 살롱에서 과음을 했더니 몸이 뻐근하여 사우나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뻐기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문통제는 발전 저해>
여=일부의 그저 「먹고 놀자판」은 대부분의 열심히 노력하는 우리 이웃들에게 심한 좌절감을 안겨줄 우려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TV를 보면 모두 다 만족하는 모습이고, 불만을 털어놓는 사람은 거의없어요. 살아가는 진실된 모습을 왜곡하면 계층간의 단절감은 더욱 깊어질수밖에 없습니다.
이경=문화적 창구는 별로 없는데다 가장 대중적인 문화전달매체인 TV가 이를 오도하고 있으니 큰 문제지요. 우선 대중문화의 창구를 다양화해야 할것입니다.
여=놀이문화란 한민중집단의 자연스러운 생활양식의 표현입니다. 따라서 이를 인위적으로 주도하려고 하면 오히려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게돼요. 지나친 문화통제는 문화의 발전을 저해할 뿐입니다.
이호=결국『‥을 해야 한다』는 식은 문화에도 통하지 않지요.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를 건전하게 이끌어나가면 놀이문화는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잡아가리라고 봅니다.
이경=무분별한 서구문화의 수용또한 떠들썩한 잔치문화풍토를 부채질했습니다. 문화의식이 빈곤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한국적인것은 지켜나가면서 정신을 자연스럽게 바꾸어 나가야 할것입니다.
이호=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밖으로 나가 요란스럽고 호화스럽게 노는것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빨리 정착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정리=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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