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는 여조사직 개탄, 금기가 터 잡아|선산군 고아면 원호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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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선산군고아면원호동 속칭 들성(평성)마을은 2백35가구 중 32가구를 뺀 2백3가구가 몽당 선산김씨.
고려말 경주목사 금기가·기울어져 가는 사직을 개탄, 관직을 버리고 낙향해 당초 이곳에서 16km 거리의 선산군옥성면포상동 하송산 아래 터를 잡았다. 이곳에서 여생을 마친 김기가 하송산에 묻히고 후손이 번성하면서 비좁은 골짜기를 벗어나 청룡산과 산줄기 사방20리나 병풍처럼 둘러싸인 남쪽 들판으로 옮겨「들섬」이라 이름 지은 것이 오늘날의 원호동이다.
금기의 5대손이자 이조명종 때 청백리이던 김취문 대에 이르러 후손이 더욱 번성, 사종파로 분가하면서 원당골 욋골 아랫골 등10∼20여채씩 새로운 마을을 형성해 5백여년이 흐른 지금은 모두 12개 자연부락이 모여있는 큰 마을로 발전했다·
동구밖에는 임란 당시 순절한 김종무(김취문의 아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충신비가 마을의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다.
동서로 마주보며 마을전체를 성처럼 둘러싸고 있는 청룡산과 당산 등은 모두 김씨네 종산·예부터 부촌을 이뤄 학문에 전념한 탓인지 5·19 직후엔 사무관급이상 고급공무원만도 20여명이나 배출했다.
요즘에도 적게는 10마지기, 많게는 80여 마지기의 농사를 자영하며 충행렬의 정통 씨족사회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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