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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재현의 시시각각

권력자 들먹이다 결국 구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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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박재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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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는 화장품 시장에선 ‘미다스 손’으로 불릴 정도로 수완이 좋다. 20대 중반부터 화장품 사업을 시작해 불과 10여 년 만에 1000억원대의 거부가 됐다. 2010년부터 ‘자연 미인’을 표방하는 네이처리퍼블릭의 대표로 있다. 검찰은 “계좌 추적을 해보니 돈이 너무 많아 횡령이나 배임 등의 혐의는 별도로 조사하지 않았다”고 했다.

부장판사 출신 최모 변호사는 로펌을 거쳐 2년 전 개인 사무실을 열었다. 현직 때 소년범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글을 써 문예상을 받았다. 최 판사는 자신도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친척집을 전전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고시원에서 하숙집으로 돌아와 혼자가 되면 외로움에 어느새 약한 어린아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 외에도 한때 특수 수사로 명성을 날렸던 검사장급 출신 변호사와 현직 부장판사·의사·건설업자 등이 얽히고설키면서 막장 드라마 같은 법조비리 의혹이 터져 나왔다. 사건 발생 뒤 어설픈 위기 대응은 화를 키웠고, 검찰 수사로 이어지는 결과를 자초했다. 성공가도를 달렸던 두 사람은 어쩌다가 한 방에 훅 갈 위기에 처했을까.

#자기 과시는 적을 만든다

정 대표의 해외 원정도박 혐의에 대한 수사는 경찰에서 시작됐다. 경찰은 2014년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넘겼다. 검찰도 같은 사유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정 대표 측의 입이 문제였다. 변호사와 친분이 있는 사정당국 관계자의 이름을 들먹이고 다닌다는 첩보가 들어간 것이다. 정 대표는 결국 지난해 말 검찰 재수사를 거쳐 구속 수감됐다. 쓸데없었던 정 대표 측의 자기 과시는 불운과 망신을 불러들였다. 수십억원의 변호사 비용을 쓰고도 기대만큼의 성과를 보지 못했고, 시민들 사이에선 네이처리퍼블릭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 조짐마저 일고 있다.

#이익엔 위험이 따른다

최 변호사가 경제적 주름살을 펴기 시작한 건 지난해다. 1억원 안팎의 돈을 투자한 것을 계기로 알게 된 유사수신업체 대표의 사건을 맡으면서다. 그녀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대가로 20여억원을 받아낸다. 로펌 시절 연봉의 10배를 한 번에 거머쥔 것이다. 이어 정 대표의 항소심 사건을 변론하면서 보석을 조건으로 50억원의 베팅을 요구했다. 20억원은 선불로, 30억원은 예금통장에 보관하는 형태로. 그녀 역시 재판장과의 친분을 내세워 필요 이상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검찰은 “만약 ‘재판장이 보석을 약속했다’는 등의 허위 사실을 내세워 돈을 받았다면 사기죄에 해당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익을 챙기려면 위험 을 감수해야 하는 이치를 몰랐던 것일까.

#싸움은 호기심을 이끈다

두 사람은 돈 앞에선 진흙탕 싸움이나 다름없는 볼썽사나운 광경을 연출했다. 20억원의 반환 여부를 놓고 구치소 접견 장소에서 몸싸움을 벌였다. 최 변호사와 사실혼 관계에 있다는 사람은 진단서를 끊어 정 대표를 고소했다. 정 대표는 반대로 과다 수임료 문제를 제기하며 서울변호사협회에 진정을 넣었다. 싸움은 대중의 호기심을 끌 수밖에 없다. 공평하지 않은 게임 머니가 걸렸을 경우 양비론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파계(破戒) 법정’의 생리일 것이다. 타인의 이목을 내팽개친 배경에는 “내가 법률가”라는 교만과 “나는 천억대 자산가”라는 허세가 작용하지 않았을까.

#흥분하면 진다

청나라 강희제는 성격이 급했던 넷째 아들 윤신에게 ‘계급용인(戒急用忍)’이란 네 글자를 남겼다. “급한 것을 경계하고 최대한 참아라.” 윤신은 이후 옹정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빼달라”며 돈의 갑(甲)질을 한 사람이나, 박봉의 공무원 시절을 보상받겠다며 평균 수임료의 1000배를 불렀던 변호사는 뭐가 그리도 급했을까. 상식을 뛰어넘는 법조계 돈거래는 이성적으로 다뤄져야 할 사안이다. 법원·검찰·변호사단체는 흥분할 게 아니라 사건의 끝을 봐야 할 것 같다. 논설위원

박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