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4281)-제82화 출판의 길 40년(34)-양장제책의 기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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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우리나라 근대 제책기술의 역사는 개화기 인쇄기술의 도입과 그 궤도를 같이 한다.
신교육이 보급되면서 교육에 필요한 교과서를 비롯해 많은 양의 인쇄물이 생산되었고, 이를 생산하는 대규모 인쇄소에는 작업의 공정상 제책부를 둘 필요가 생겼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초기의 출판산업은 교과서 출판으로 뿌리를 내리게 마련이다.
우리나라 초기의 제책업계를 둘러보기 위하여 올해 71세인 이우제책사의 강흥원사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옮겨본다. 강사장은 우리나라 출판계가 인정하는 양장제책기술의 일인자로서 많은 제책기술자를 배출해낸 공로자의 한사람이다.
강사장은 지난날 자신이 기술을 습득한 경위를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나는 l7세 되던 해에 남산 아래 수정 (지금의 충무로3가 옛 일신국민학교 자리 부근) 에 있는 일본인 경영의 조판제본소에 견습공으로 들어갔습니다. 당시 서울장안에서 일본인이 경영하는 제본소는 이 한 군데 밖에 없었어요. 나는 21세가 될 때까지 이곳에서 일을 배웠답니다. 요즈음은 제책기술이 기계화하여 모든 공정이 분업화해 있읍니다만, 그 당시엔 한사람이 제책의 전 공정을 두루거쳐야 했지요. 나는 지금도 「견습」 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조판제본소에서의 4년은 제책에 대한 일을 골고루 견습할 수 있었던 기회였읍니다』
스스로를 가리켜 아직도 견습생이라고 말하는 그의 장인됨은, 졸속작업과 대량생산만을 치닫고있는 오늘의 출판산업 풍토에 경종을 울리는 한마디가 아닐 수 없다.
제책이라는 과정은 책 만들기에 있어 마무리 단계로서 상품성을 높이고 읽기에 편리하며 책을 원형대로 오래 보존하게 하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과정이다. 자칫 책의 내용만을 중시하는 잘못된 경향으로 흐르기 쉬운데, 오늘의 출판은 내용 못지 않게 책의 형식도 중요하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할 것이다.
우리의 전통 서책의 제책술은 뛰어난 것이었다. 서지적으로 특기할 형식을 갖춘 고려본이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같은 제책술은 일품성이 강한 것이며 오늘날과 같은 대량생산체제에 전적으로 도입되기에는 어려운 인쇄방식이고 제책형식이다. 따라서 서양식 제책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전통서책 형식 가운데 특징적인 우수한 요소를 오늘의 책만들기 형식에 도입하는 문제는 편집자나 제책 전문가들이 심사숙고해야 할 하나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강흥원사장을 안 것은 을유문화사에서 한글학회지은 『큰사전』제1권이 간행되던 1947년 여름의 어느 날이라 기억된다. 이『큰사전』 의 출판은 우리 민족의 보배로운 문화재라는 생각에서 이 책의 제책을 어디에 맡길까 몇 달 동안을 궁리한 끝에 마침내 강사장이 경영하는 이우제책사에 맡기기로 결정을 보았다.
이우는 일제때부터 축적해온 기술로 최선을 다해서 책을 꾸며주었고, 그때부터의 신뢰를 바탕으로 을유와 이우는 지금까지 거래를 계속해 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원래 「제책」 이란 말을 안 썼어요. 「결책」 한다고 했죠. 그리고 지금은 「양장」이라는 말을 쓰지만 일본인들은「상제본」이라고 하더군요.』
그는 조판제본소 이재근감독(공장장)의 종용으로 그와 함께 그 곳을 나와 박인환의 호의로 그가 경영하던 중앙인쇄소 2층에 제책소를 차려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는 조판제본소와 거래하던 기독교서회의 성경· 찬송가 일감을 끌어왔다. 그 당시 조선사람이 경영하는 제책소에서 처음으로 순양장본을 해냈다는 대견스런 추억을 그는 지금도 간직하고 있었다.
그 후 만주의 건국대도서관 제본부로 일자리를 옮겼다가 해방과 더불어 귀국, 선배인 민용순과 동업으로 1946년 일첩제책사를 설립했다. 그의 제책기술이 비로소 해방조국에 이바지하게 된 것이다. 정음사의 『우리 말본』 ,학원사의 『대백과사전』 ,을유문화사의 『큰사전』등 굵직굵직한 제작에 참여했다.
『내 밑에서 양장 제책 기술을 배운 사람이 아마 수백명은 좋이될겁니다. 그 가운데 독립해서 제책소를 차린 업소로는 동명제책(김학준) 동성제책 (최익진) 대성제책 (이창인) 지일사 (황용연) 건명사 (안상하) 등이 있지요』
이렇게 말하면서 우리나라 제책계의 현실과 앞날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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