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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락·소외·분노·희망 트럼프…현상 키운 네 가지 키워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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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국 공화당의 26일(현지시간) 5개 주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압승을 거두며 대선 후보로 더욱 다가섰다. 그를 따르는 지지층의 심리와 환경엔 미국 사회의 그림자가 숨어 있다. 지난달 1일 13개 주에서 동시 경선을 치렀던 ‘수퍼화요일’ 경선에서 트럼프에게 69.7%라는 몰표를 줬던 버지니아주의 뷰캐넌카운티.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곳은 애팔래치아산맥 인근의 석탄 지대다. 석탄이 사양산업이 되며 이 마을은 버지니아 내 최고 실업률인 10.6%를 기록했다. 인구는 1980년 이후 40% 감소했다. 트럼프 지지자인 대너 퀴닌은 “나이 든 사람은 그럭저럭 살겠지만 젊은 사람들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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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락 트럼프 몰표 지역, 사양산업 + 높은 실업률



트럼프 지지자들을 설명하는 첫 키워드는 ‘쇠락’이다. NYT가 수퍼화요일 경선에서 트럼프에게 표를 몰아준 ‘트럼프 마을’ 4곳을 분석한 결과다. 매사추세츠주 폴리버(트럼프 득표율 62.2%)는 섬유산업 지역으로, 주의 최고 실업 지대 중 하나(8%)다. 테네시주 메이컨카운티(57.1%)는 담배 농장으로 먹고사는데 그나마 있던 신발 공장이 멕시코로 이전하며 실업자를 양산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선 공통적으로 저학력·저소득층에서 트럼프 지지가 높다. 미 시사월간지 애틀랜틱은 지난 2월 저학력 트럼프 지지층을 분석하며 “대졸 미만에게서 세계화에 따른 제조업 쇠퇴의 피해가 컸다”고 설명했다.


소외 백인 47% “우리 몫 뺏겨 … 역차별 당했다”



트럼프 지지층의 또 다른 공통점은 정치적 소외감이다. 싱크탱크인 랜드코퍼레이션이 지난 1월 공개한 대선 패널 조사에서 ‘나 같은 이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데 동의한 응답자의 86.5%가 트럼프를 지지했다. 공화·민주당 주자를 통틀어 가장 높다. 특히 백인이 대부분인 트럼프 지지층에선 ‘백인 소외론’이 팽배해 있다. CNN이 31개 지역에서 150명의 트럼프 지지자를 인터뷰한 결과 이들은 ‘백인 역차별’에 분노한다. 레트 벤호프는 “전 세계에서 미국으로 와 자기 몫을 가져가는데 누구도 백인들을 챙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 CNN·카이저가정재단 여론조사에선 백인 응답자 중 절반에 육박하는 47%가 ‘백인에 대한 차별이 있다’고 답했다.


분노 흑인·무슬림 등 이방인들 향해 강한 반감



경제적 쇠락과 정치적 소외는 정치권과 이방인에 대한 분노로 향한다. 기득권 정치와 첫 흑인 출신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 무슬림이 주된 타깃이다. NYT는 트럼프 지지층의 특성과 관련해 “이들은 분노했고(Angry) 충성스럽다(Loyal)”고 진단했다. 경제 잡지 포브스는 “트럼프가 미국인들의 분노와 피해 의식을 효율적으로 선거 활동에 이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1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머틀비치 유세장에서 만난 디나라는 여성은 CNN에 “집에 갔더니 누군가가 내 집을 차지한 뒤 내 음식을 먹고 내 침대에서 애들을 재우고 내 지갑의 돈을 쓴다. 그렇다면 왜 (우리 백인과) 다른 사람을 뽑아 우리 애들을 힘들게 만들겠는가”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지지층 일각에선 오바마 대통령이 무슬림이라거나 아프리카 출생이라는 음모론까지 먹힌다. 마이클 루니는 “오바마가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남자에서 여자로 성전환한) 브루스 제너가 나는 여자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희망 “그런 진실 말한 트럼프가 우릴 구해낼 것”



트럼프 충성층은 대신 트럼프에게서 희망을 본다. CNN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이런 후보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정치인 모두가 진실을 말하기를 두려워하지만 트럼프는 적어도 말은 한다”(커트 핸스척), “사업가인 트럼프가 우리를 빚더미에서 구해낼 것”(린다 윌커슨)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트럼프로 인해 미국은 갈라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14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자의 56%가 ‘트럼프 호감’에 답한 반면 민주당 지지자의 12%만이 ‘호감’이라고 밝혔다. 백인은 39%가 트럼프에게 호감을 표시한 반면 흑인(7%)·히스패닉(15%)은 트럼프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미국에는 두 개의 우주가 있다”(제리 코널리 민주당 하원의원)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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