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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 남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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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현대적인 의약품들이 문영의 이기로 인류의 생존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는 점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문명의 이기가 잘못 이용되었을 때에는 인류의 생존 그 자체를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의료행위 및 이와 관련된 관습은 문화의 한 중요한 부분이다. 의료의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 인류는 문화적인 수단에 의해 각종 질병에 대처하면서 지금과 같은 체질형태에로 진화해왔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생존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던 바로 그 의약품들이 이제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 때문에 오히려 인류의 생존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항생제의 남용은 하나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우리에게 항생제는 거의 만병통치의 약으로 간주되어 왔다. 근래 우리나라의 항생제 수요는 해마다 급증해 왔었고, 통계상으로는 작년 한해만도 무려 2천4백억원 어치의 각종 항생제가 생산되었다고 한다.
항생제는 질병에 효과적인 치료제이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사용하면 인체에 항균력을 약화시켜 우리의 생존 그 자체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항생체와 세균간의 싸움은 결국 인체의 항균력을 떨어뜨렸고 항생제의 단위를 높여주고 말았다. 무슨 병이든 초기에 강력히 대처하는 것이 고생을 덜하는 것으로 생각한 나머지 의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진단하여 고단위의 항생제를 거리낄 없이 찾는 것이 거의 일반화되고 말았다. 『이제 웬만한 약은 잘 듣지 않는다』는 말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것도 당장의 효과에만 치중해온 우리의 의약품에 대한 태도가 빚어낸 자업자득이라 하겠다.
항생제 사용을 철저히 규제하는 문화에 비한다면, 우리의 경우와 같이 항생제를 남용하고 있는 문화에서는 질병치료는 더 어려워지고 만성질환자를 만들어낼 확률은 더 높아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아마도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무덤을 파고 있는지도 모른다.
의약품 생산자 및 소비자·약사·의사 등 우리 모두가 항생제 남용의 폐해를 심각하게 생각해볼 시기가 온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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