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융프라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융프라우」는 젊은 처녀라는 뜻이다. 하필 산봉우리 이름을 왜 그렇게 붙였는지 모르겠다. 아마 알프스산을 연모한 어느 청년의 열정이 그런 궁리를 해낸 것이 아닐까.
스위스 베른에서 인터라켄으로 갈라지는 전동차를 갈아타고 1시간쯤 가는 61km의 거리. 철도연변은 수선화며, 팬지며, 데이지, 피튜니어, 프리뮬러등이 릴레이라도 벌이듯이 피어 있다.
스위스의 자연은 자연그대로의 풍경이라고 하기엔 너무 아름답다. 조물주는 특별히 스위스를 골라 1급 조경사를 불러다가 산하를 온통 설계한 것 같다.
베른에서 융프라우요호까지는 열차 삯이 1백27스위스 프랑. 미국돈으로 50달러쯤 된다. 『꽤나 비싼 값이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열차를 탔지만 인터라켄에서 톱니바퀴가 달린 전동차를 갈아타고는 그런 생각이 사그라지고 말았다.
벌써 해발1천34m나되는 그린델 발트역에서 해발 2천221m의 샤이데그로 기어오르는 전동차는 숨도 가쁘지 않다. 여느 기차모양으로 양쪽 바퀴가 있고, 그 한가운데에 1백27mm 너비의 톱니바퀴가 달려 역시 톱니궤도를 타고 위로 기어올라간다. 때로는 25도의 가파른 경사도 있고, 갈 「지」자 모양으로 휘어지는 길목도 있다.
산과 산을 건너뛰는 다리, 억수를 퍼붓는 폭포를 지난다.
이런 등산열차는 스위스 사람이나 생각해낼 법하다. 남한의 절반만한 좁디좁은 나라에 산과 호수가 빼곡히 들어찼으니 무얼로 사람들이 벌어먹고 산다는 말인가.
1896년부터 16년간에 걸쳐 스위스의 실업가는 등산궤도를 설치했다. 내노라하는 등산가도 목숨 내놓고 기어오르는 산비탈에 철로를 놓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을지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하다.
정상부분에선 바위와 빙산과 비탈마저 가팔라 그만 바위를 뚫었다. 장장 7·6km에 달하는 바위동굴을 톱니열차가 관통한다.
그래도 융프라우 꼭대기까지는 아직 7백m를 남겨두고 해발 3천4백54에서 전동차는 멎었다.
그러나 4층 높이의 엘리베이터가 기다리고 있었다. 융프라우 턱밑까지 이번엔 승천을 한다. 여기서 전망대로 나서면 검은 구름은 손끝에 닿을 것 같고 눈보라가 뺨을 친다.
도대체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구조물을 만들고 식당과 여관까지 지어놓았는지, 사람이 할 일인데도 믿어지지 않는다.
그 꼭대기에 누가 걸었는지 태극기가 보인다. 그것도 사람들의 눈에 제일 잘 띄는 자리에. 벽엔 또 박아무개, 김아무개 이름까지 낙서해 놓았다. 우리 민족의 극성스러움을 보는 것 같아 절로 미소가 나왔다.
3시간 남짓 걸린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전동차 없는 융프라우가 있을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의 험산 준봉에도 이런 전동차 레일이라도 놓으면 세계의 명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명산 개발이라면 펄쩍 뛰는 애산가들은 융프라우를 보면 얼굴이 붉어질 것이다.【취리히에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