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신성식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안철수의 생각’을 생각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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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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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

어제 신문에 실린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사진이 인상적이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관광객과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인데, 그간의 비장한 표정 대신 편안함을 담고 있다. 정당 투표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제치고 2위를 차지한 여유가 느껴진다. 새누리당과 더민주당의 진흙탕 싸움에 지친 이들에게 제3세력의 등장이 기대로 다가온다. 국민의당은 캐스팅 보터가 아니라 국회 운영을 주도하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진흙탕에 물들지 않으려면 ‘정책 올인(다 걸기)’이 필요하다. 국민의당은 총선에서 100여 가지 공약을 했다. 2012년 안철수 후보 대선 공약에 바탕을 둔 듯하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실천 가능성 중심의 ‘겸손 모드’였고, 이번에는 ‘다소 세게, 다소 달콤하게’로 변했다. 가령 대선 공약이던 노인장기요양보험 대상자의 점진적 확대를 이번에는 ‘2배로 확대’로 바꾸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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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공약 중엔 화제가 된 게 없다. 다르게 보면 맵거나 짠 양념을 쓰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안 대표는 18일 “공약점검특별위원회를 설치해 당장 합의할 수 있는 공약은 20대 국회 개원 직후부터 입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려면 국민의당부터 공약의 실시 설계도를 내놨으면 한다. 거의 모든 공약이 단문으로 돼 있어 실체가 분명하지 않다. 우선순위·세부 방안이 있는지, 사회적 합의에 의한 증세 전략이 뭔지 궁금하다. 과감하게 버리거나 바꾸는 것도 차별화 전략이 된다. 기초연금이 좋은 소재다. 현재 28만 명이 국민연금을 받는다는 이유로 최고 10만원가량 매달 덜 받는데, 이들도 다른 사람처럼 20만원을 받게 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렇게 하면 당장은 2000억원 정도밖에 안 들지만 20년 후에는 매년 10조원 이상 필요하다. 노인 인구가 급속히 증가해서다.

이번 선거에서는 복지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 덜했다. 그간의 과속 페달에서 잠깐 발을 뗐을 뿐 복지 확대는 피할 수 없다. 보장 범위·재원 등의 합의가 필수다. 이를 위해서는 적대적 양당 구조보다 다당제가 유리할 수 있다. 정당정치가 양극화되지 않고 타협과 협의를 이끌어낼 수 있게 온건하고 중도적인 정당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복지정치의 두 얼굴』 강원택 등). 안 대표는 2012년 『안철수의 생각』에서 “복지는 단순히 있는 것을 나눠 갖고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와 긴밀하게 연결돼야 한다. 여건에 맞춰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를 전략적으로 조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대표의 4년 전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을 것으로 믿는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