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모두 불만과 자성의 소리|해금시기 선택이 잘못됐다-민정|전제조건에 자기발 묶인 셈-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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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통령 방미 전 국회개원을 위한 여야협상이 끝내 실패함으로써 정국은 당분간 소강상태에 접어들게 됐다.
협상결렬후의 여야자세를 보면 이번 일로 여야간에 감정이 격화됐다거나 태도를 경화시키는 기미는 없다는 점에서 이번 협상결렬이 바로 정국긴장을 몰고 올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양당은 국회부재상태가 장기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곧 협상을 재개할 움직임이다.
협상이 결렬되고나자 민정·신민 양당에는 자체비판과 반성이 고개를 드는가하면 양당의 판단과 정치력에 문제점이 있다는 여러 가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민정당 측은 국회개원에는 전제조건이 있을 수 없다는 명제에 매달렸지만 협상의 쟁점은 그 전제조건을 어떻게 소화하느냐는 것이었다. 이같이 모순된 입장에서 출발한 민정당은 협상초기에는 신민당 측이 낙관론에 흐르도록 유연한 자세를 보였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여당 측은 신민당의 민한당통합과정을 겪고 난 후부터 자세가 경화돼 신민당 측의 「개원후 사면·복권공동발의」라는 한발 물러선 제의도 수용치 못했다. 야당 측의 이 제의는 사실상 여당 측의 개원 후 노력하자는 주장에 한발 접근된 것이기도 해서 여당 측이 조금만 신축성을 보였더라면 타협의 여지는 있었던 것이다.
야당 측 또한 처음에는 12대국회의 환경과 여건을 조성키 위해 최소한의 요구라고 사면 ·복권 및 양심수 석방문제를 제기했으나 결국 전제조건으로 자승자박하는 결과를 초래해 헤어나갈 길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김동영 신민당총무는 당초 이민우 총재가 제시한 5개항(해금은 기해결)중 여야간 첫 만남에서 가장 해결이 쉬운 것으로 보인 2개항만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재야 및 당 일부에서는 노동자문제를 곁들이라고 했으나 김총무는 첫 회전에서부터 풀기 어려운 난제를 내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당 측이 사면·복권문제에 완강한 자세를 보이자 김총무는 당내 역학관계, 특히 동교동입장을 고려치 않을 수 없어 신축성이 적어져 버렸다.
이 같은 개원협상을 보면서 양측진영내부에는 다같이 불만과 자성의 소리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여당내부에는 해금시기선택에 잘못이 있었다는 비판이 있다.
선거 후 전면해금을 3욀6일 단행한 것은 정국전반의 운용에 책임을 갖고있는 정부 여당으로서는 성급했다는 것이다.
해금을 당연히 개원협상용으로 남겨두었다면 개원협상은 원활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 같은 주장은 정부 여당 내에 앞으로 험난하고 산적한 정치일정에 대한 확고한 대비책이 없다는 비판이기도하다.
신민당 내에서도 비민추계와 상당수의원들로부터 당내 상도·동교 양계파의 신경전 때문에 자연스러워야할 12대 국회개원에 전제조건을 달아 스스로 발이 묶인 것에 불만의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김옥선의원은 정무회의에서『민주주의 한다면서 「호메이니」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지시나 받아서야 되겠으며 언제까지 옥상옥으로 당을 끌어가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상당수의원들도 대통령 방미 전에 국회를 열어 줘 여당 측에 신세를 지워놓을 수도 있었을 터인데 두 김씨의 눈치를 보느라 신축성을 상실한데 아쉬움을 토로하며 이민우 총재의 등원결단을 은근히 바라기도 했다.
이 같은 여야내부의 자성과 비판을 종합해보면 기저에 깔린 공통인식은 어떤 경우에도 극한적 격돌은 피하고 원만한 타협점을 찾아야하고 국회는 아뭏든 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찬 민정당총무가 협상결렬후『대통령의 방미가 끝나면 서로 자유스런 입장에서 협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향적 자세를 보였고 김신민총무도 빠른 개원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정국긴장은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특히 신민당의 이총재나 김총무가 현 정부가 약세니까 의총을 연 뒤 장내-장외 투쟁을 병행해 총선거분위기의 연장으로 몰고 가자는 강경론에 대해 국회자체를 무시하고 정국을 파행으로 몰고 갈 수 없다는 이유로 동조치 않은 점은 주목된다.
이총재는 정무회의를 통해 사실상 개원전제조건이 된 2개 요구사항에 대해 『나는 한번도 전제조건이라 말한 바 없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고 말해 대통령의 방미 후 새로운 사태가 벌어지면 독자적인 개원결단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또 신민당에는 대통령 방미기간 중 예우한다는 뜻으로 조용히 지내면 여당 측이 뭔가 새 언질을 내놓고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따라서 이 같은 여야의 자세로 보아 5월초쯤 개원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이 크다.
협상이 5월초 재개돼도 이미 실패한 2개항 요구조건의 명시적 타결이 쉽게 이루어지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그래서 양측은 국내 정치적 여건과는 다른 상황, 즉 5월중 활발해질 남북회담을 계기로 정치력을 발휘해 서로가 명분과 체면을 크게 손상치 않으면서 돌파구를 여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지난번처럼 구차스럽게 양당의 체면이 걸리는 개원조건협상보다는 이신민총재의 결단으로 개원국회의 일정·의제 등만 합의하여 국회부터 열고보자는 방식으로 개원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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