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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 어깨춤·박장대소…옹녀, 파리를 홀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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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상히도 생겼네 맹랑히도 생겼네∼”

남녀 성기를 묘사하는 걸쭉한 입담에 객석 여기저기가 술렁거렸다. 누군가 키득거렸다면, 어떤 이는 박장대소였다. 곱게 정장을 차려입은 50대 여성은 웃다 웃다 결국 눈물까지 흘렸다. 그리고는 커튼콜 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박수는 10분 넘게 이어졌고, 불이 들어와도 환호는 좀체 그치질 않았다.

| 국립창극단 ‘마담 옹’ 프랑스 첫 공연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스타일”
옹녀 사연 나올 때마다 자지러져
출연진 “국내보다 반응 더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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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가 프랑스 최고 공연장 중 하나인 파리 테아트르 드 라 빌 무대에 올랐다. 이 극장의 ‘2015-2016 시즌 프로그램’ 중 하나다. 14일 밤(현지시간) 첫 공연에서 출연진의 열연에 공연장을 가득 메운 프랑스 관객들이 뜨겁게 호응했다. [사진 국립극장]

한국 창극(唱劇) ‘마담 옹’이 파리를 홀렸다.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프랑스명 Madame Ong)가 ‘테아트르 드 라 빌’ 무대에 오른 14일 저녁(현지시간), 객석은 뜨거웠다. 150여 년 역사의 테아트르 드 라 빌에 창극이 공연된 건 최초다. 이 극장 에마뉴엘 드마르씨 모타 예술감독은 “오늘을 기점으로 창극은 유럽 전체로 퍼져나갈 것”이라며 아시아 전통의 세대교체를 점치기도 했다. “가부키(일본)·경극(중국)에 이어 한국의 창극이 유럽의 주목을 받을 것이다.”

| 150년 전통 극장 1000여 석 매진
한국적 해학·풍자, 유럽서도 통해
“경극·가부키처럼 주목 받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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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전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개막 30분 전 로비는 빼곡했고 1000여 좌석은 일찌감치 매진이었다. 국립창극단 김성녀 예술감독은 “시집가기 전날처럼 떨린다. 한국적 풍자와 해학을 낯설어하지 않을지…”라며 마른 침을 삼켰다. 하지만 막이 오르고 3분도 안돼 온기가 돌았다. 열다섯에 첫 시집을 간 옹녀, 서방은 냉병에 걸리거나 벼락을 맞거나 용을 쓰더니 하나둘 세상을 뜬다. 프랑스어 자막으로 남편이 죽어가는 ‘웃픈’ 곡절이 소개될 때마다 객석은 그야말로 자지러졌다.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애끓는 곡조엔 숨을 죽였고, 휘모리 장단에 엉덩이를 실룩일 때는 함께 어깨를 들썩였다. 스테이지 뒤에선 “국내 공연 때보다 반응 더 좋아”란 소리가 흘러나왔다.

공연은 밤 11시쯤 막을 내렸다. 극장을 나서는 관객을 붙잡고 물었더니 “코리아는 어떤 나라인가?”라는 반문이 돌아왔다. 30대 남녀 커플은 “한국은 스마트폰으로 유명하지 않나. 그런데 이런 유쾌한 전통이 있다니.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스타일이다.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유교에 대한 선입견이 깨졌다. 삶을 개척하는 옹녀 캐릭터가 마음에 든다”는 60대 여성 관객도 있었고 “아시아 전통이라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 속도감이 강했다”는 대답도 있었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대본·연출 고선웅, 작창·작곡 한승석)는 국립창극단의 판소리 일곱바탕 복원시리즈의 하나로 2014년 초연됐다. 외설로 치부되던 ‘변강쇠 타령’은 색골남녀의 음담패설에서 애틋한 로맨스로 변신했다. 초연 당시 창극 사상 최장기(26일) 공연과 객석 점유율 90%를 기록했다. 작품의 메시지는 ‘옹녀의 명예회복’. 고선웅 연출가는 “옹녀는 음탕녀도 팜므파탈도 아닌 열녀”라며 “머나먼 외지에서 이토록 호응하니 기가 세긴 센 모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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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을 위해 출연진·연주자·스태프 등 56명이 한국에서 건너왔다. 이들의 체재비와 무대설치비는 물론, 총 4회 공연 개런티 1억여원까지 모두 테아트르 드 라 빌 부담이다. 한국 예술가들이 돈 싸 들고 찾아가 “제발 무대에만 세워 달라”며 하소연해도 차갑게 외면받았던 10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모타 예술감독은 “지난해 1월 이 작품을 접했는데 선율과 언어가 주는 질감이 신선했다. 섹슈얼리티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격을 갖췄다”고 평했다. 안호상 국립극장장은 “침체된 유럽 예술계의 시선이 아시아로 쏠리고 있다. 창극으로 상징되는 한국 전통이 유럽의 새로운 구세주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테아트르 드 라 빌(Theatre de la Ville)=1862년에 문을 연 파리시립극장. 모든 공연은 외부 대관 없이 극장이 직접 기획한다. 개관 당시엔 프랑스 오페라의 본거지였고, 2차 세계대전 전후엔 장 폴 사르트르·브레히트 등의 연극을 올렸다. 1980년대 이후 피나 바우쉬·로버트 윌슨·피터 브룩 등을 배출하며 현대 공연예술의 최전선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파리=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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