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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부터 시작해도 노년 전에 전문가 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75호 29면

미국 대선 현장을 보기 위해 지난 2월 아이오와 코커스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 다녀왔다. 현장에서 느꼈던 충격 중 하나는 후보자들의 나이였다. 엄청난 자금을 확보했던 60대의 젭 부시도, 공화당 지도부가 밀어주던 40대 중반의 마르코 루비오도 경험 부족한 아이같이 느껴졌다. 급기야 70대 후보들에게 밀려 먼저 중도에 포기하는 모습을 보며 미국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칠십은 넘어야 나올 수 있구나 싶었다. 76세의 버니 샌더스는 물론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도 모두 70대에 들어섰으니 말이다.


‘정치는 나이 들어 하는 놀음이니까 가능하겠지’라고 생각하는 소심한 중년들이 있다면 80세 목욕관리사, 일명 ‘목욕의 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는 피부 손상 없이 때 미는 솜씨, 피부에 맞게 때 타월을 골라 쓰는 맞춤형 관리로 인정받았다. “이게 다 15년 연구의 결과”라며 여전히 분석을 멈추지 않는 그는 너무도 젊어 보였다. 우스갯소리로 “수분이 많은 곳에서 일하셔서 늙지 않으셨나 보다”고 말할 정도였다.


40년간 이발 일을 하다가 생계를 위해 이발 대신 세신 일을 시작했을 때가 65세. 새로운 직업에 도전한 지 15년 만에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전문가가 된 것이다. 남들 보기에는 어떨지는 몰라도 스스로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일이라는 자부심과 충만한 책임감에 오늘도 출근 준비에 바쁘다니, 그 젊은 생각이 부럽기만 하다. 따지고 보면 이 글을 읽고 있는 70, 80대는 이제야 ‘젊은 어른’인 거고, 중년이라고 생각하는 당신은 아직도 청년인 거다.


필자의 지인은 정년을 앞두고 요리 학원에 다녔다. 그동안 미안했던 가족, 그 중에서 마누라를 위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정년 이후 한 달간 삼시세끼를 차려주며 정말 열심히 부인을 위해 봉사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부인이 던진 말은 이랬다. “이제 그만해. 한 달간 먹어줬으니 이젠 제발 나가서 노세요.”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던 부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했고 오로지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했던 것이 미안도 했지만, 고마워 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깨진 것에 적지 않게 서운했노라고 심정을 털어놓았다.


다행히도 그는 요리가 재미있다고 느꼈고 소질도 있다고 생각해 지금은 요리 전문가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이번 생이 마지막일까?” “언제 죽어도 호상이다”라는 칙칙한 농담을 하는 분들은 차라리 갖고 싶었던 장난감을 사서 조립이라도 해보는 게 어떨까. 아니면 사진이나 글쓰기라도 배워보시던지. 그것이 나의 또 다른 직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인생 1막, 주위의 눈치로 선택했던 직업을 마무리해야하는 시점이 됐다면, 이제는 그만 초조해하자. 그 대신 하면 할수록 재미있고 신나는 ‘나만의 2막’을 지금부터 준비해보자. 10년이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1만 시간의 법칙’에 따르자면, 아직은 청년인 당신이 60세가 되었을 때 그리고 그런 당신이 80세가 되었을 때는, 그 분야 최고의 전문가로,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테니.


허은아(주)예라고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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