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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난민캠프를 가다③] 모래사막 속 미로, 자타리 난민 캠프와 아즈락 캠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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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 위의 또 다른 시리아.... 세계 최대 시리아 난민캠프 자타리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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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시리아 난민캠프 자타리 난민 캠프. 사진 정원엽

지난달 15일 요르단 북부 자타리 난민캠프를 방문했다. 과연 듣던 데로 요르단은 바람의 나라였다. 모래 바람이 불어 시야를 가리기 일수였다. 수도 암만에서 30분을 달리자 건물이 사라졌다. 지평선이 보이기 시작했고 모래사막이 이어졌다. 1시간 30분여 도로를 달려 세계에서 2번째로 큰 난민촌 자타리(Zatari) 캠프에 도착했다. (소말리아 난민을 위한 케냐 다다브 캠프가 최대 규모)

자타리캠프 : 자타리캠프는 요르단 북부에 위치해 있어 시리아 남부 국경을 넘어온 이들이 초기에 정착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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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만들어져 비정형적인 형태로 만들어진 자타리의 모습.

자타리 캠프는 시리아 난민 캠프로는 세계 최대 규모(11만명)이고 인구 수로 따지면 요르단의 4번째 도시에 해당한다. 시리아 국경에서 12㎞ 밖에 떨어지지 않은 자타리 캠프의 입구에는 장갑차와 무장한 군인들이 서 있었다. 입구에는 빵을 들고 걷는 시리아 난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모래바람이 때때로 그들의 등을 떠 밀었고 벽에 붙어 있는 난민 구호 포스터는 색이 바랜 채 찢어져 있었다. 입구에서 300m쯤 진입해 캠프 내 검문소에서 취재 허가를 받았다. 암만에서 서류가 도착하지 않아 대기하며 점심을 먹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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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리 캠프 내에서 가족이 걸어가는 모습.

자타리 캠프는 2012년 만들어졌다.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자 요르단으로 몰려온 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급하게 만들어져 체계적이지 않고 복잡한 형태로 확대됐다. 아즈락 캠프(2013년) 처럼 체계적이고 정돈된 형태가 아니라 자연 발생적인 마을의 모습을 띄게 된 거다. 9㎢의 면적에 1만 8000여채의 주거용 컨테이너(카라반)가 들어서 있고 11만 명이 모여 산다. 자타리는 요르단 사막에 지어진 또 다른 시리아다. 1시 40분이 돼서야 캠프 진입 허가가 났다. 우리가 허가 받은 시간은 오후 3시까지. 난민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오후 3시까지 캠프를 나가야 했다.

자타리 캠프 내 링로드의 모습.

캠프 외곽을 감싸고 있는 링로드(ring road)를 천천히 돌았다.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건물이 보였다. 난민 등록을 위한 건물이라고 했다. 캠프 관계자는 “난민들도 캠프의 삶이 열악하다는 걸 알지만 요르단에서 집을 임대하고 돈을 벌기가 막막해 캠프에 정착하는 이들이 많다”며 “이들도 캠프를 거쳐 다른 나라로 넘어가거나 시리아로 돌아가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수용 인원이 10만 명이 넘는 다는 이야기에 놀란 표정을 짓자 캠프 관계자가 “시리아 난민의 80%는 캠프가 아니라 도시 주변부로 흘러 들어갔다”고 말했다. 요르단 정부는 도시 외곽의 난민을 56만 명도로 추산하지만 이는 정식으로 국경을 통과해 들어온 숫자일 뿐이다. 불법 월경을 포함하면 시리아 난민의 규모는 100만 명에 가깝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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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리 캠프내 공공 건물에는 어김없이 높은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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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리 캠프내 공공 건물에는 어김없이 높은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난민 등록 센터에는 높은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철조망을 철거하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현장에서 안전을 최우선시 하는 비정부기구(NGO) 들이 거부했다고 했다. 캠프 안에서는 1시간 가량 밖에 머무르지 못했다. 사람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없었다. 눈인사를 하고, 멀리서 그들의 삶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몇몇 아이들이 손을 흔들었다. 눈 앞에 그들의 삶이 있는데 보이지 않는 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모래바람 때문에 차량 창문을 오래 내리고 있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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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리 캠프내 카라반에 기대 있는 아동의 모습

이들도 캠프에 갇혀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허가를 받으면 캠프에서 나가 주변 마을에서 일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물론 고용주가 난민에 대한 연대책임을 보증했을 경우다. 정식으로 국경을 넘어 난민으로 인정받은 경우 유엔에서 관리하는 홍채 등록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기존 식량 바우처에 더해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추가적인 물품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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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리 캠프 내 샹젤리제 거리로 향하는 길

무질서하고 황량한 텐트들 사이로 사람들이 북적 이는 거리가 보였다. 캠프 관계자는 프랑스 파리의 번화가와 이름이 같은 ‘샹젤리제 거리’라고 했다. 어색한 거리 명칭에 고개를 갸웃했다. 캠프 보안 책임자는 캠프 설립 초기에 프랑스가 세운 병원이 이 거리에 있어서 샹젤리제 거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했다. 그는 “샹젤리제의 상점들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며 “캠프 내에만 2000여개 이상의 가게가 있다”고 했다. 아랍어로는 ‘두칸’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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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리 캠프내 상점 `두칸`의 모습.

자타리 난민캠프는 물과 전기도 부족하고 상하수도와 화장실 문제도 해결이 쉽지 않다. 하지만 가장 우려되는 점은 아이들이다. 전쟁의 트라우마가 이들을 짓누르고 있다. 현지 월드비전 직원 엘리아스는 “여러 구호기구들이 정서치료를 포함한 각종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지만, 마음 깊은 곳의 상처를 완전히 치료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자타리 난민캠프에서는 지난달 2일 5000번째 아기 리마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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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락 캠프에서 놀고 있는 시리아 난민 아동들.


# ‘주스 킹’과 ‘프리미어 리그’ 열풍 아즈락 캠프



3월 17일 찾은 아즈락 캠프는 자타리 난민캠프에 비해서 훨씬 정돈되어 있었다. 자타리난민 캠프가 자연발생적으로만들어진 사막도시라면, 이곳은 한국의 세종시처럼 기획된 도시였다. 2013년 처음 만들어진 캠프는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데 현재 약 2만명이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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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아즈락 캠프의 지도.

캠프 내에는 19개 NGO가 각자 장점을 가진 분야를 중심으로 난민 구호활동을 펴고 있었다. 캠프는 총 4개 구역(2,3,5,6번)으로 나눠져 있는데, 3번 구역을 예로 들면 유엔난민기구(UNHCR)가 아동 보호를 전담하고, 유니세프(UNICEF)가 교육을, 세계식량기구(WFP)가 식량, 월드비전이 학교 급식과 식수를 담당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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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락 캠프 내 카라반의 모습.

월드비전의 경우 식수 사업에 강점을 보인다고 했다. 캠프 내에 9만 리터짜리 물탱크 5~6개를 만들어 물을 길러낸 다음 파이프로 12개가 한 섹터인 카라반으로 보내는 식이다. 난민 가족은 하루 25~30리터의 물을 쓸 수 있다.

캠프 내 난민들은 “할 일이 별로 없다”고 했다. 주로 앉아서 휴식을 취하거나 캠프 내 슈퍼마켓에 가서 장을 보거나 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곳에서도 일을 할 수 있지만 하루 최대 6시간, 3개월 반 정도만 일거리가 주어진다.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고, 일자리는 적기에 이들은 무료할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은 취재하러 온 기자를 보고 신기하다는 듯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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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자를 보고 모여든 시리아 난민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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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자를 보고 모여든 시리아 난민 아이들.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축구장이다. 난민이 왠 축구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스포츠야 말로 삶에 지친 이들에게 활력을 되찾아 주는 요소다. 8만 요르단 디나르(약 1억 3000만원)라는 거금을 들여 NGO들이 난민 캠프에 축구장을 지은 이유다. 축구 열기는 생각보다 높았다. 지난해 말 시작된 난민촌 내 42개팀 500여명이 참여한 토너먼트 대회는 2월 23일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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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축구 토너먼트 결승전 후 캠프에서 축제를 연 모습.

당시 우승한 카라만(karaman)팀은 “모두가 챔피언”이라는 소감을 남겼다. 캠프 내에서는 그날 대규모 축하 파티가 열렸다 현지 월드비전 직원 에릭 키사는 “축구는 절망감을 잊도록 정서적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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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내 난민 축구팀이 연습경기를 하고 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축구팀인 스토크시티와 2부리그 울버햄튼의 코치도 지난해 아즈락 캠프를 찾아 축구를 가르쳤다. 울버햄튼은 설기현 선수가 뛰었던 팀이다. 이들은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축구를 가르쳤다. 현재 캠프 내에서만 여성 50여명이 축구 수업을 듣거나 축구를 한다. 사막 위 녹색 그라운드에서 여학생들이 축구 하는 모습은 이질적이었지만 희망적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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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들이 캠프 내 축구장에서 축구경기 수업을 받고 있다.

양호승 월드비전 회장은 “캠프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픔을 잊고 치유하는 시간”이라며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있는 형태의 프로그램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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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락 캠프 내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시리아 난민 아동.

다행인 건 캠프 내에 난민 아동들의 학교 등록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캠프 학교에 등록한 아동이 1300명에 불과했지만 올해 3월 기준 2300명까지 증가했다. 등록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까지 포함하면 3000여명이 학교를 다니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5000명이 넘는 아동이 난민캠프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직 부족하지만 난민 아동들이 교육받을 기회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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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캠프의 주스킹(왼쪽)과 양호승 월드비전 회장.

학교 방문 당시 ‘주스킹(Juice King)’을 만날 수 있었다. 주스킹은 요르단 현지 월드비전에서 학교 급식 자원봉사하고 있는 직원의 별명이다. 학교 급식의 일환으로 주스와 간식을 나눠주다 보니 그런 별명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너무 좋다”고 말했다. 교실을 방문했을 때 아이들은 그렇게 좋아하던 주스를 기자에게 건네 줬다. 주스를 받았지만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니 차마 마실 수 없어 한 아이에게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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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락 난민 캠프 카라반 내부의 천장 모습. UNHCR이 제공한 텐트로 방한재를 만들어 붙여뒀다.


#“캠프둥이칼라드에게 고향을 보여주고 싶다.”



UNHCR이라는 단어가 선명히 찍혀 있는 카라반 앞에 온 가족이 나와 있었다. 지난해 9월 시리아 홈스를 떠나 요르단으로 왔다는 무함마드(37)는 지쳐 보였다.

그는 “아즈락 캠프의 겨울은 시리아보다 추웠다”며 “겨울을 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카라반 안을 둘러보니 가재도구가 거의 없었다. 고향에서 가져온 물건이 없는지 물었더니 “아무 것도 가져오지 못했다. 아이들을 데려 온 것만 해도 감사하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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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시리아를 탈출해 아즈락 난민캠프로 온 무함마드의 가족

무함마드는 오른쪽 다리가 불편하다고 했다. 전투기 공습을 피하다 폭탄 파편에 맞아 오른쪽 다리를 다쳤다는 거다. 그는 “부상을 입고 난 후 충격이 심해서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며 “현지에서 치료를 받기에는 위험이 높아 진통제와 처방전만 챙겨서 떠났다”고 말했다. 먼 곳을 떠나 오며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아직도 몸이 성치 않다는 말을 덧붙였다.


▶ 관련기사
① [시리아 난민캠프를 가다①] 모든 문제의 원인은 시리아였다
② [시리아 난민캠프를 가다②] 캠프 밖이 더 험난 한 난민의 삶



고향 소식을 물어보자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남아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붙잡혔고 사망자도 늘어나고 있다”며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조심스레 시리아 내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물었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꺼내기가 부담스럽다”고 답했다. 그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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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가족의 카라반 내부 전경.

무함마드는 시리아 내전이 발생하기 전에는 전자 엔지니어로 일했지만 요르단으로 와서는 아무 일도 못하고 있어 답답하다고 했다. 생활은 WFP의 식량 바우처 120 요르단 디나르(JD, 19만5000원)와 현금 20JD(3만3000원)로 생활을 한다고 했다. 한 살 배기 막내 칼라드가 인터뷰 중간에 웃으며 아빠에게 안겼다. 그는 “우리 막내는 캠프에서 태어났다”며 “칼라드가 시리아 홈스의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언젠가는 오겠죠”라고 기자에게 물었다.

후원 월드비전 02-2078-7000. www.worldvision.or.kr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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