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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뺨치는 정치인들의 '시장 먹방', 그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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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양각색 점퍼를 입고 입이 찢어져라 음식을 받아먹는 정치인의 모습, 익숙하지 않은가.

이번 총선에서도 정치인 ‘먹방’(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 정치인 ‘먹찍(먹는 모습을 직접 찍은 사진)’이 어김없이 인기다. 4년마다 반복되는 한결같은 모습에 물릴 법도 한데 말이다. 재래시장은 이미 후보들의 선거운동 필수코스로 자리 잡은 지 오래. 도대체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은 왜 재래시장으로 달려가 음식을 먹는 것일까?


1. "뼛속까지 서민이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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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먹을거리가 많다. 먹을거리가 많은 곳에는 사람들이 모이고 일상이 녹아든다. 시장은 민심의 밑바닥을 살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다.

이 때문에 재래시장에 가면 민심을 살피는 정치인이란 이미지를 얻는다. 노점에서 파는 음식을 받아먹고 나면 ‘서민 정치인’ 이미지도 따라 온다. 채규만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서민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구나’란 동질감을 느낀다“며 ”뻔하지만 재래시장에서 음식을 먹는 것만큼 효과적인 서민 공략법은 없다“고 말했다.

재래시장 먹방으로 가장 큰 ‘재미’를 본 건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그는 대선 후보 시절 욕쟁이 할머니가 말아주는 국밥을 한 수저 가득 떠먹는 홍보 영상으로 ‘돈 많은 후보’에서 ‘흙수저 출신 서민’ 이미지를 갖게 됐다.


2. 잘 먹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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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은 집착한다고 할 만큼 '먹는 모습'을 좋아한다. TV에선 채널을 불문하고 매일같이 먹방이 나온다.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TV에서도 수천 명의 먹방 전문 BJ(방송진행자)들이 매일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어댄다.

하재근 문화 평론가는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원초적인 본능이다 보니 먹는 모습만 봐도 쉽게 자극을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물며 먹성 좋게 먹는 모습은 말해 무엇하랴. 호감을 주는 게 당연하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먹방 유세’에 강하다. 선거 유세인지 먹방 투어인지 헛갈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난달 31일에도 김 대표는 서울 양천구 목3동 시장을 돌며 상인들이 주는 옥수수빵·어묵·마른 호박·팥죽·추로스 등을 일일이 챙겨 먹었다.

지난 7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강원도 춘천 풍물시장을 찾아 매운 어묵과 메밀전병을 사먹었다. 김 대표는 1940년 생으로 올해 76세다. 역대 총선 사령탑 중 최고령이다. 철저한 식단 조절로 건강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는 그지만 이날 만큼은 수많은 취재 카메라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이것 저것 먹었다.


3. "나 잘 먹지? 건강해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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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0세가 된 힐러리 클린턴도 잘 먹기로 유명하다. 피자·타코·아이스크림 등 가리지 않고 입을 크게 벌리는 그녀의 모습에서 70대 노인을 떠올리는 유권자는 거의 없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고령 정치인의 경우 잘 먹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건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아프면 먹고 싶은 것도 없는 법. 맛있게 뭔가를 먹는 것만큼 건강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고령의 정치인에게 먹방은 생존 전략이다.


4. 진짜 배가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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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 정치인들은 상상 이상으로 많은 일정을 소화한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지난 1일 오전 6시 30분 서울 노원역에서부터 안양·안산·인천을 거쳐 오후 8시 서울 은평구에 도착하기까지 수도권 11곳을 다녀갔다. 같은 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10개의 일정을 소화했다. 고령의 김종인 더민주당 비대위원장 역시 지난 31일 9개 일정을 소화했다. 말 그대로 살인적인 스케줄이다.

이렇다 보니 재래시장에서 먹을 걸 보면 손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한 정당 대표 비서실 관계자는 “선거 운동 기간엔 장시간 이동하는 일이 많다 보니 끼니를 거르는 일도 잦다”며 “재래시장 유세는 끼니도 해결할 수 있어 좋다”고 귀띔했다. 정말 배가 고파서 제대로 된 먹방을 찍을 수 있었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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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기자 lee.e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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