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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척결 드라이브로 다진 시진핑 정권 정당성에 얼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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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4호 7 면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 류윈산(앞줄 오른쪽)·장가오리(앞줄 왼쪽) 상무위원의 친·인척들이 파나마 로펌의 조세회피 스캔들에 연루된 것으로 폭로됐다. [AP=뉴시스]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권력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바람은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불었다. 지난 4일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공개한 ‘파나마 페이퍼스(Panama Papers)’가 일으킨 바람이다. 문서엔 각국 지도층의 해외 재산도피와 탈세 의혹이 담겨 있다. 여기에 시 주석을 포함해 전·현직 중국 지도부 8명의 친·인척 이름이 보인다. ‘부패척결’ 드라이브로 1인 지배체제를 확고하게 구축한 시 주석이 거꾸로 ‘부패 의혹’으로 통치 권력의 정당성에 훼손을 입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실 중국 지도자들의 부패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대부분 당국의 ‘오리발’과 ‘언론 통제’로 별탈 없이 넘어갔다. 한데 이번은 이전과 좀 다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중 3명과 전직 지도부 5명 등 모두 8명의 지도부가 동시에 친·인척 부패 의혹을 받고 있어서다.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반부패 저항 세력에는 반격의 기회다. 또 내년 말로 예정된 당 대회에서 시 주석 중심의 차기 지도부 구성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시 주석, 취임 전 친·인척 축재 경고했지만이번 파나마 페이퍼스에는 시 주석을 비롯, 류윈산(劉雲山)·장가오리(張高麗) 등 정치국 상무위원 3명의 친·인척 이름이 올랐다.


시 주석의 매형 덩자구이(鄧家貴)는 2008년 버진아일랜드에 ‘엑셀런스 에포트’ 등 2개의 유령 회사를 설립했다. 2012년부터 휴면 상태지만 이전의 부패 의혹은 그대로 남아 있다. 덩은 또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 회사인 완다(萬達)그룹의 왕젠린(王健林) 회장과 가깝게 지내며 해외 부동산과 금융사에 투자, 수천만 달러의 재산을 모은 인물이다. 왕 회장은 지난해 11월 덩자구이 부부가 2009년 완다그룹 주식 2860만 달러(약 330억원)어치를 매입했으나 2014년 12월 홍콩 증시 상장을 두 달 앞두고 처분했다고 밝혔다.


엄청난 수익을 남길 수 있었지만 시 주석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이를 포기했다는 의미다. 앞서 블룸버그통신은 2012년 덩자구이 부부가 3억7600만 달러(약 4155억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했었다. 누가 봐도 거액의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거나 탈세를 위해 유령회사를 차렸다고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시 주석은 주석 취임 전부터 친·인척들의 축재에 대해 경고하고 투자 재산 처분을 종용했다고 한다. 실제로 덩씨 부부는 2014년까지 부동산과 광산 등 최소 10개 회사에 투자했던 자산을 모두 처분했다. 그러나 처분 재산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려진 게 없다. 류 상무위원의 며느리 자리칭(賈麗靑)은 2009년 버진아일랜드에 설립된 회사 ‘울트라 타임 인베스트먼트’의 이사와 주주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국가안전부장, 공안부장을 지낸 자춘왕(賈春旺)의 딸로 2014년까지 메릴린치 은행에서 일한 금융 베테랑이다.


류 위원의 아들 류러페이(劉樂飛)는 중국의 헤지펀드를 운영하며 중국 최대 증권사인 중신(中信)증권 부회장이다. 류 위원 아들 부부가 중국 금융권의 황제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 이들 부부의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소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장가오리의 사위 리성포(李聖潑)는 버진아일랜드에 모두 3개의 유령회사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홍콩 부호의 아들로 홍콩 17개 상장사 등재이사다. 자신이 이사로 있는 상장사들의 세금 포탈과 비자금 은닉을 위해 유령회사를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파나마 페이퍼스’ 스캔들을 보도한 환구시보를 베이징 시민이 들여다보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미확인된 ‘강력한 힘’이 문서를 유출하는 데 관여했다고 보도했다. [AP=뉴시스]

리펑 전 총리 딸 등 원로들 친·인척도 연루전 국가지도부, 즉 당 원로들의 친·인척까지 부패 의혹을 받는다는 점도 시 주석에게는 부담이다. 리펑(李鵬) 전 총리의 딸 리샤오린(李小琳) 전 중국전력국제발전공사 사장과 자칭린(賈慶林) 전 정치협상회의 주석의 외손녀 리쯔단(李紫丹?재스민 리) 등 전직 정치국 상무위원 5명의 가족 및 친·인척도 버진아일랜드에 유령회사를 설립했거나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전력의 여왕으로 군림했던 리샤오린은 12년간 몸담았던 중국전력국제유한공사를 떠나 지난해 6월 한직으로 알려진 대당(大唐)집단공사 부회장에 취임했다. 2014년 공개된 버진아일랜드 유령회사 관련 자료에서 그의 이름이 언급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떤 조사나 사법 처리를 받은 적은 없다. 그만큼 그의 권력은 철옹성이다.


자칭린 전 정치국 상무위원의 외손녀 리쯔단은 미국 스탠퍼드대 1학년에 재학 중이던 2010년 버진아일랜드에 회사를 세워 중국에 투자까지 했다. 당시 그의 나이 18세. 리의 가족들이 재산을 빼돌리고 탈세를 할 목적으로 리 이름으로 회사를 세웠을 가능성이 크다. 리는 학창 시절 사치행각으로 유명했다. 상류층 파티에 참석해 다이애나 빈의 조카 등과 찍은 사진이 패션지인 보그에 실리기도 했다.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 부주석의 남동생 쩡칭화이(曾慶淮)와 톈지윈(田紀雲) 전 부총리의 아들 톈청강(田承剛)도 2006년 남태평양의 조세피난처인 니우에섬에 2006년 설립된 회사의 이사로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외손녀사위인 타이캉(泰康)생명 창업자 천둥성(陳東升) 회장은 2011년 조세피난처인 버진아일랜드에 세운 유령회사의 주인으로 확인됐다.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의 아들 후더화(胡德華)도 2003년 버진아일랜드에 세워진 한 유령회사의 주주이자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후야오방은 중국 개혁의 대표 인물로 시 주석이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 중 한 명이다.


새로운 권력투쟁으로 비화할 가능성도가족들의 부패 의혹이 구체적인 증거와 함께 제시되고 있는데도 중국 당국의 반응은 예전 그대로다. 지난 5일 있었던 중국 외교부 정례 브리핑. 한 외신기자가 물었다.-각국 지도층 해외 재산 도피와 탈세 의혹을 담은 ‘파나마 페이퍼스’에 중국 지도부 친·인척 이름도 보인다. 이에 대한 견해는.


(훙레이(洪磊) 대변인의 얼굴이 갑자기 상기됐다.) “포풍착영(捕風捉影·바람을 붙잡고 그림자를 잡는다)이다. 우리는 근거 없는 소문에 논평하지 않는다.”더 이상의 질문은 허용되지 않았다. 과거 ‘오리발’ 전략 그대로다.


언론 통제는 ‘오리발’과 한 세트다. 지난 5일부터 중국의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와 인터넷 포털에선 파나마 페이퍼스라는 단어 검색이 되지 않고 있다. 기존 자료도 모두 제거된 상태다. 이 때문에 네티즌들은 둬웨이(多維) 등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에 비판 글을 올리고 있다. 한 네티즌은 7일 둬웨이에 “부패의 상징이 돼버린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을 비난하기 전에 현 지도부 친·인척 비리 의혹부터 해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 지도부 역시 제2의 저우융캉”이라고 비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6일 “이번 사건과 관련 언론을 통제하는 것은 보석을 숨겨놓고 ‘여기에 보석이 없다’는 간판을 세운 것과 같은 바보짓”이라며 “이는 오히려 일반인들의 국가지도부에 대한 의혹과 불신을 키워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내년 말로 예정된 제19차 당 대회에서는 시 주석 체제의 2기 최고 지도부가 들어선다. 시 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제외한 5명은 모두 정년 퇴직할 예정이다. 시 주석 반대파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시 주석 중심의 지도체제 구성에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파문이 새로운 권력투쟁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시 주석이 최근 긴급 정치국 상무회의를 소집한 것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책을 강구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홍콩에서 활동하는 차오밍(曺鳴) 중국 정치 분석가는 “이번 비리 의혹을 방치할 경우 시 주석의 반부패 투쟁이 정당성을 잃어 현 최고 권력층에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명무실한 공직자 재산 공개에 대한 제도 개선 목소리도 커질 수 있다. 중국은 1995년 공직자 재산공개법이 제정됐으나 실제로는 상급자에게만 재산을 보고하고 일반에는 공개되지 않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2012년에는 인권운동가 후자(胡佳), 인권변호사 궈페이슝(郭飛雄), 정치 평론가인 베이징 이공대학 후싱더우(胡星斗) 교수 등 1000여 명이 공직자와 그의 친·인척 재산 공개를 요구하는 서명을 하기도 했지만 관련법 제정에는 실패했다. 왕취안제(王全杰) 옌타이(煙臺)대 교수는 “당 간부 재산공개 제도는 수십 년 전에 도입했어야 할 제도다. 최고 지도층이 모범을 보여야 이 제도가 성공하고 제2의 파나마 페이퍼스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형규 중국전문기자?choi.hyung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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