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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사회의 만남] 4. 법·제도 손질 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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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0면

대전보건대학 이기석(81)이사장에게 '계룡산 자연사 박물관'은 인생의 결정체다. 지난 50년간 전세계에서 3개뿐인 길이 30m, 무게 70t의 브라키오사우루스 화석을 포함, 우주로부터 날아온 운석 등 20만점을 수집했다. 자식 같은 애장품들이 여러 사람의 관심 속에 전시되는 공간을 간절하게 기다려 왔다.

계룡산 국립공원 내 1만2천평 부지에 최근 기초토목 공사를 시작했다. 시민단체가 환경훼손을 문제 삼아 지난 5년간 공사를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순수한 노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민단체가 야속했지만 지나간 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요즘은 정부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자신이 새운 재단법인 청운문화재단이 4백억원을 들여 짓고 있지만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기는커녕 부가가치세 40억원을 납부해야 할 형편에 처한 것이다.

李이사장은 "국가가 할 일을 대신 해준다는데 세금을 더 내놓으라고 하니 기가 찬다. 그돈을 박물관 운영비에 보태쓰게 해달라고 재정경제부까지 찾아갔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입장료에 세금이 붙지 않는다는 것이 재경부의 거절 이유였다.

지난해 둘러본 기타큐슈 야하다 자연사 박물관의 경우 지방자치단체에서 역과 박물관을 오가는 셔틀버스를 내주고 인근 고교 과학교사를 2년간 파견해줄 정도였다. 李이사장은 "운영비 지원은 바라지도 않을테니 정부가 발목이나 잡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자연사 박물관을 비롯한 과학관 설립이 법제도 면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과학관 설립과 운영에 불편함이 없도록 세제혜택 등 법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과학관은 과학과 사회를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고리인 만큼 전국의 과학관을 정부 단독으로 관장하기는 불가능하다. 사설 과학관 설립이 원활할 수 있도록 세제 등 각종 혜택으로 기부문화를 활성화해야 과학기술 문화 창달이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2001년 미국과 유럽, 일본의 주요 과학관을 둘러보고 '해외 주요 과학관 조사보고서'를 작성한 포항공대 임경순 교수는 이들의 기부문화가 부러울 뿐이다.

임교수는 "런던 자연사 박물관의 경우 입구에서부터 전시관까지 기부자들의 명단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세제혜택은 물론 전시물보다 잘 보이는 곳에 명단을 배치해 기부하고 싶은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오게끔 자극하기에 충분했다"고 전했다.

이헌규 국립중앙과학관장은 "과학관 운영이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지원책이 절실하다"며 설립 못지않게 운영상의 지원책 마련을 강조했다. 지원이 없을 경우 전시물 교체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결국 관람객이 줄어드는 악순환을 거듭한다는 지적이다. 금전적인 지원도 좋지만 수익사업을 활발하게 펼 수 있도록 제도도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올해 초 개정된 '과학관 육성법'을 '박물관.미술관 진흥법' 수준으로 보완하고, 조세특례제한법.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 등에 과학관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학관이 박물관.미술관에 못미치는 대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미술관을 3년 이상 운영하다 다른 곳으로 이전하기 위해 토지.건물을 파는 경우엔 양도소득세가 면제되지만 과학관은 해당사항이 없다. 박물관.미술관 건립에 적용되는 농지전용부담금(공시지가의 20%) 면제와 교통유발부담금 면제도 받지 못한다. 또 박물관.미술관은 과학관과 달리 운영법인이 수익사업에서 발생한 소득을 관련사업에 사용할 경우 전액 손비로 인정되고 교육용 전력요금을 적용, 요금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과학관의 운영방식 또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관람객이 찾아들 수 있도록 양보다 질적인 수준 향상을 꾀해야 한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이융남 박사는 "껍데기뿐인 과학관 증설은 바라지 않는다. 전문가가 운영하는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과학문화재단 조숙경 전문위원실장은 "과학기술이 갖고있는 순기능 뿐 아니라 역기능까지 여러 측면들을 한편의 영화를 보듯 느끼게 해주는 '필스온 사이언스(Feels-on Science)' 개념으로 과학관을 꾸려가야한다"고 주장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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