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루떡할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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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시장엘 가면 어떤 물건이고 손을거쳐 주고받고 한다. 오랜 나날 이것저것을 사다보면 여러형태의 손에 접하게되고 또 그 손들의 생활환경도 짐작하게 된다.
내가 가끔 기웃거리는 수입품코너가있다. 대개는 눈요기로 한번 그 앞에 서보는 것인데 참으로 현란한 여러가지 물건이 진열돼 있다. 30대 전반의 여주인이 조금은 으스대는 풍모로 빨간 빌로드의자에 발을 꼬고 앉아 대개는 줄칼로 손톱을 다듬거나 진홍빛으로 물을 들이거나한다. 손톱을 깎지않고 채색만 반복하기 때문에 먹이를 할퀴려는 동물의 발톱같아 그로데스크한 느낌을 지울 수가없다.
저 여자의 전신은 무엇일까? 나는 속마음으로 점찍어 보기도 한다.
『저 사람은 밤낮 구경만 하더라』하는듯이 거드름을 부리며 힐끗 한번보고는 제 손톱으로 눈을 옮기는 여자에게 나도 미련없이 등을돌린다.
시장을 빠져나오기 직전의 가두에 메리야쓰점포가 있다. 이곳의 여주인은 돈에만은 달관한듯한 눈초리로 예리한 시선을 가진 40대초입의 여자다. 모조품인지는 몰라도 번쩍거리는 품이 5푼은 실히 됨직한 반지를 왼편약지에 끼고 있다.
사내아이 두놈이 하루에도 몇번씩 부벼빨게하는 양말인지라 나는 여기서 곧 잘 양말을 산다. 물건을 사는 동안 보석이 발하는 화려한 빛의 입자에 내마음이 어지러움을 타는 때가있다. 그 어지러움속에 간혹 부러움의인자가 끼여있어 『이놈!』하고 내 마음을 꾸짖는다.
그곳에서 나와 조금 걸어가면 인도쪽벽에 바짝 몸을 붙이고 앉은 시루떡 할머니를 만난다. 헌 점퍼로 두루뭉수리처럼 입고, 솥뚜껑같은 손을 떡시루전에 턱 걸치고는 흰털이 섞인 눈썹을 치켜 오가는 여자들의 눈치를 살핀다.
비닐덮개사이로 무럭무럭 솟는 김은 곧 내 어린것들을 연상케한다. 일금 천원어치를 산다. 할머니는 신바람이 나서 칼을 든다. 손톱은 일자로 달아빠지고 대나무 마디같은 관절, 보리떡처럼 거무티티한 할머니의 손을 보는 동안 나는 참좋다.

<인천시 선안 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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