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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지구 선정…본인도 모르게 당서 공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정치사형수 성북에 돌아오다』라는 이색적인 구호를 내건 이철후보(37)의 당선은 출마에서부터 극적이였다.
라이벌이 집권당의 현직보사부장관과 조병옥박사의 장남이자 민한당 선거대책본부장이란 거물이었기 때문에 신민당은 이 지역을 정책지구로 하고 이후보의 승낙도 없이 공천자발표률 해 버렸던 것.
당원18명에 대학생 자원봉사대 2백50명, 당 지원자금 4천만원의 이 후보가 금메달로 당선된 것은 기적이었다. 당사도 겨우 보름 전 미아리 속칭 텍사스촌 20평을 보증금3백 만원, 월세 15만원에 얻었을 뿐이었다.
유세 장에서 이 후보가 「돌풍」을 예고해도 다른 후보들은 물론 유권자들까지도 「학생시위」정도로 가볍게 생각했었다.
부산 중-경기고를 거쳐 69년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한 이 후보는 3번 제적, 3번 복학을 되풀이하고 74년 민청학련사건의 주동자로 사형선고를 받았고 10·26이후 광주사태로 구속되기도 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으나 그의 주의에는 늘 대학생들이 끊이질 않았다.
생계를 위해 사글세방을 전전하며 용산 시장 일대에서 칼국수장사·스페어택시운전사·막노동을 하다 「운동」을 그만두기로 결심, 「학생과컴퓨터」라는 잡지의 발행인을 맡았었다.
48년 경남 진주태생으로 아버지 이근진 씨(70)는 고교에서 카운슬러로 재직했었다. 1남1녀의 외아들. 83년5월 친지의 중매로 김홍미씨(33)와 결혼, 1녀를 두고있으며 서울 정농3동 달동네의 조그마한 판자집에 보증금 1백 만원, 월세8만원에 세들어 살고있다.
이후보는 2월하순 16년 만에 대학을 졸업토록 되어있었으나 이번 입후보를 위해 자퇴했다.
이후보는 13알 상오 10시쯤 당선이 확실해지자 성신여대 개표장에 나타나 지지청년들의 환호와 탄성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제정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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