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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수사·시민제보의 위력 보여줬다|독극물사건 발생서 검거까지 취재기자 방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국민들을 불안속에 몰아넣었던 식품4사 독극물투입협박사건은 아무런 인명피해없이 범인이 잡혀 정말 다행입니다. 범인을 검거한 경찰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번 사건의 범인검거는 단순히 사건해결이라는 측면보다도 이러한 범죄는 반드시 잡히고 만다는 교훈을 보여줌으로써 또다른 모방범죄에 쐐기를 박았다는 점에서 더욱 값지다고 봅니다.
-그렇습니다. 사건자체가 일본범죄를 모방해 「한국판 모리나가사건」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역시 이러한 범죄가 우리나라에선 발 붙일수 없음을 입증한 셈이죠.
-그러나 안심하기엔 아직 이르죠. 협박편지는 모두 7명명의로 13차례나 되지만 범인신씨는 「2명 명의로 6차례만 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나머지 5명 명의의 7차례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어요. 신씨가 범행전체를 자백하지 않았다고 볼수도 있지만 현재로선 또다른 별개의 범죄조직이 있거나 신씨의 배후조직이 있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앞으로 수사과정에서 모두 밝혀지겠죠. 경찰은 「범인1명검거」선에서 결코 만족하거나 긴장을 풀어서는 안되리라고 봅니다. 나머지 협박편지부분이외에도 이물질이 나온 범행실현부분과 협박전화·다방접선 시도부분이 모두 설명돼야 할 것입니다.
-이번 사건은 공개수사가 얼마나 필요불가결한 것인지를 거듭 일깨워준 경우이기도해요.
-공개수사를 하니까 겨우5일만에 범인이 잡히는데 그걸 숨기려한 해당회사나 경찰의 자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바로 그 점 때문입니다.
-더구나 온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협박범과 타협할 생각으로 요구한 금액을 은행에 입금한 회사들은 규탄을 받아 마땅하다는 게 시민들의 반응이었어요.
-결국 수사는 공개해야 해결이 빠르고 범죄꾼은 반드시 잡힌다는 선례를 또 한번 기록한거 아닙니까?
-그렇지요. 비공개는 제보의 단절과 수사진의 안이(안이)란 역효과밖엔 없었던 셈이죠.
-차제에 「모방범죄」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요. 외국 것이라면 분별없이 거의 무조건 받아들이는 패션이나 외국인은 물론 교포라고만 해도 사족을 못쓰는 풍조도 이번 사건과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라고 봐요.
-검거 뒤의 경찰표정은 어떻습니까.
-물론 환호작약이죠. 특히 범인을 검거한 서울용산경찰서는 시민과 다른 경찰서로부터 「정말로 잘했다」는 격려전화가 쇄도하는 가운데 전직원이 들뜨고 싱글벙글해 잔칫집같은 분위기였읍니다.
-상부보고다, 본국수사회의다며 안개를 피운 채 하오내내 얼굴을 볼수 없었던 방동환 용산서장은 하오 9시쯤에야 모습을 나타내 『수사가 아직 완전히 마무리된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축하를 받기엔 이르다』면서도 취재진과 부하직원들에게 『수고했다』 『고맙다』를 연발하며 기쁜 모습을 감추지 못하더군요.
-수사지휘를 맡았던 강찬기수사과장은 오는 5월이면 회갑을 맞는 40년 경력의 노(노)수사관인데 방서장으로부터 『회갑을 앞두고 수사관 생활을 마감하는 최고의 피날레를 장식했다』는 칭찬을 듣고 마냥 기뻐하더군요.
-26일 「결정적인 제보」를 받고 뛰기 시작한 용산서 수사팀은 범인추적 초기단계에서부터 범인 신씨를 진범으로 확신했던 것 같아요. 문제는 언제 검거하느냐에 있었던 거지요. 29일 상오 11시 방서장은 농심회사를 방문, 신춘호사장과 만난 뒤 회사문을 나서면서 신사장에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일본경찰보다는 낫습니다 수일내 해결될 거예요』라고 자신있게(?)말했거든요. 다들 관할경찰서장의 의례적인 인사말로만 알아들었으나 사실은 「뼈대」가 있는 말이었던 셈입니다.
-만3일동안 잠복근무를 해야했던 경찰이 가장 무서웠던 것은 영하 17도를 기록한 강추위였다고 해요. 무엇보다도 발이 얼어붙어 고생을 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잠복근무를 해도 범인이 귀가하지 않자 29일 상오엔 『×××국회의원 선거사무실에서 신선생님을 점심에 초대키로 했으니 용두동 H식당으로 나와달라』며 집안에 들어가 「범인부재」를 확인하기까지 했어요.
-그러고보니 범인과 검거자와 피해업체 중 농심사사장의 성이 공교롭게도 신씨 종씨네요. 기연이라 할수 밖에….
-용산서의 축제분위기에 비해 서울시내 다른 경찰서는 「공을 놓친」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어요.
-지난해 12월28일 삼양식품사로부터 신고를 받고 수사를 가장 먼저 시작했던 서울종로경찰서는 30일 범인이 용산서 형사들에 의해 붙잡히자 그야말로 「닭 쫓던 개 먼산 쳐다보는 격」이 돼 버렸읍니다.
-범인의 주거지가 용두1동으로 밝혀지자 이 지역을 관할하는 청량리경찰서는 겸연쩍은 표정이었읍니다.
-청량리경찰서는 30일 기업체 공갈전과가 있고 몽타지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정모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신병을 확보, 하오 4시쯤 목격자 대질을 위해 제일은행본점에 갔다가 목격자 유양이 없어진 것을 알고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겁니다.
-맞습니다. 그 시간에 유양은 용산경찰서팀이 데리고 있었지요.
-범인이 검거됐다는 소문이 퍼진 것은 30일 하오 1시쯤이었어요. 수사본부가 설치된 서울시경은 갑자기 긴장한 취재진의 발걸음으로 부산해졌죠.
-그 시간에 수사본부장인시경 안희상 제2부국장은 전경교육을 나가 사무실을 비웠고 다른 형사과 간부들은 검거확인물음에 『무슨 소리냐』며 오히려 놀라는 표정을 지었어요.
-강민창시경국장도 『어디서 뜬 소문을 듣고 이러느냐』며 계속 딴청을 부렸죠.
-다른 채널을 통해 범인검거가 확실해지자 강국장은 하오 2시10분쯤 『유력한 용의자를 검거해 수사중이다. 더 이상은 말할수 없다』고 최초로 범인 검거사실을 비쳤죠.
-치안본부에 「유력한 용의자검거」가 보고된 것은 30일 상오 10시쯤이었어요. 김상조3부장이 안희상수사본부장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친구가? 자가용으로?』라고 되물으면서 표정이 밝아지더군요. 그러면서도 『잡았군요』라는 기자의 물음에는 『다른 사건을 하나 지시해 놓은게 있는데 그 보고』라고 연막을 피웠어요.
-그때는 자백은 나왔는데 증거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였읍니다.
-검찰에 검거보고가 들어온 것도 하오 3시쯤이었어요. 이때 「용의자 1명 검거, 자백을 받았다」는 간단한 구두보고였죠. 처음엔 반신반의했어요.
-지휘를 맡은 주성원검사와 담당부장검사인 조재석형사3부장은 통장과 도장을 찾지 못했다는 보고에 물적증거를 확보토록 지휘하면서도 『아직 범인으로 단정하기엔 어렵지 않으냐』고 반문하더군요.
-이번 사건은 또 온라인범죄 등 신종범죄에 대한 대책수립이 시급하다는 문제점도 남겼읍니다. 특히 신씨가 부평에 나타났을때 검거하지 못한 것은 은행측의 책임도 크다는 점에서 앞으로 은행측의 대비책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지난해 12월말 협박편지를 받은 식품3사중 유일하게 입금치않고 경찰에 신고했던 삼양식품사 직원들은 30일 하오 범인이 잡혔다는 보도가 터져 나오자 일제히 환호를 올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읍니다. 공개수사에 따라 경찰에 신고한 사실이 범인에게 알려진 이 회사는 범인으로부터 집중보복을 당할 것이 가장 우려되었기 때문에 이날 기쁨은 남달리 컸던 것입니다.
-사실 이 회사의 신고태도는 이번 사건해결의 실마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 회사의 신고가 없었다고 가정해 보면 범인은 다른 식품2사가 입금한 돈을 찾아갔을 것은 물론 세상에 사건자체가 알려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서울용두1동 제일기원 (주인 최요섭)에서 신씨와 함께 자주 바둑을 두었던 단골순님 권경춘씨(42·상업)는 『신씨가 5급실력으로 좋은 상대였다. 범인인줄 전혀 낌새도 못챘다』며 『현상금을 놓친 것 같아 아쉽고 바둑상대를 잃어 아쉽지만 독극물사건이 해결돼 기쁘다』고 너털웃음을 짓더군요.
-고생들 많았읍니다. 그러나 사건이 완전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 경찰·시민·업체 모두 다시 한번 슬기와 협조를 보여줘야할 것입니다.

<참석자>
오홍근차장 권일기자 한천수기자 고도원기자 도성진기자 김일기자 신성호기자 박보균기자 이덕영기자 제정갑기자 이만훈기자 이상언기자 최천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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