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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가 준 수십억 ‘부의금’ 놓고 다툰 조카들, 결과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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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10면

신격호(94)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첫째 여동생 소하씨는 2005년 1월 숨졌다. 소하씨는 장남 서정규(64)씨 등 2남3녀를 뒀다. 그해 4월 신 총괄회장은 남동생 신춘호(84) 농심그룹 회장 등과 함께 돈을 모아 정규씨에게 전달했다. 액수는 수십억원대라고 한다. 이 돈으로 장남 정규씨는 19억원 상당의 서울 대치동 아파트를, 장녀 경자(58·여)씨는 6억원대 아파트를 샀다. 기초생활수급자로 한 달에 48만원씩 받으며 살아온 막내 여동생 희완(47·여)씨도 고양시에 2억4000만원짜리 아파트를 샀다. 정규씨는 희완씨에겐 매달 250만원씩 보내 주기도 했다.

대법 “부의금 아닌 증여” 장남 승소

하지만 차녀 정림(54·여)씨에겐 따로 몫을 떼어 주지 않았다. 정림씨는 “외삼촌(신 총괄회장)이 준 부의금 중 5분의 1은 내 몫인데 큰오빠가 주지 않고 있다. 그중 일부인 1억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다른 남매들이 나 몰래 돈을 보관하고 있다”는 주장도 했다.

하지만 정규씨는 “신 총괄회장이 부의금으로 낸 1000만원을 비롯해 어머니의 장례기간 들어온 부의금 중 장례비용을 제외한 돈은 상속인들이 647만원씩 나누기로 했고 정림씨 몫은 다른 동생이 보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 총괄회장으로부터 받은 수십억원은 부의금이 아니라는 거였다.

이에 따라 재판 과정에선 신 총괄회장이 준 돈을 부의금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일반적으로 부의금은 유족들이 각자 상속분에 해당하는 만큼 나눠 갖기 때문이다. 법원은 정규씨가 수십억원을 받은 것은 사실로 확인했다. 하지만 이 돈의 성격이 부의금이 아니라 증여금이라서 정림씨에게 상속권이 없다고 판단했다.

2심은 “돈의 액수에 비춰 볼 때 사회통념상 도저히 친족 간의 부의금으로 볼 수 없다. 장남이 고인을 대신해 형제자매를 돌봐야 할 지위에 있는 것을 고려해 신 총괄회장이 증여한 돈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신 총괄회장의 딸 신영자(74)씨가 소송을 낸 정림씨를 나무라면서 정규씨를 두둔한 점과 다른 친척들도 정림씨에게 협조하지 않은 게 판단의 근거가 됐다. 대법원도 2심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법원 관계자는 “액수뿐 아니라 신 총괄회장이 돈을 지급한 시기(사망 3개월 뒤)와 방법 등도 고려됐고 원고가 관련 증거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점도 판결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장혁진 기자 analo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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